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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사막」
   이문재『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속도와 스펙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어쩌랴. 새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상대성과 점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속으로 사는 삶이 따로 있을까마는 제아무리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정속을 유지해도 나의 정속은 시시각각 속도들의 좌표상에 놓인다. 경쟁이 발전의 초석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또 그와 같은 외설적인 구호가 근대의 숙명임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고 해서 감당할 만한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속도전의 트라우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합법적 폭주조차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강변을 공적으로 들어야 하는 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물론 반대 명제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느림’ 역시 속도의 부관임을 알기에 그것을 대안으로 삼는 것조차 한가로워 보인다.

   최악은 속도와 점유가 손을 잡을 때다. 남보다 재빠르게 경력의 아이템을 점유해나가는 것이 생존 방식이라는 사실은 삶이 이미 본격적으로 게임의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증좌다. 원서를 쓸 때마다 지금까지 모은 아이템 주머니를 들여다보며 시간의 중력을 계량하거나 악수를 할 때마다 지식과 기술의 인벤토리를 드러내보여야 하는 일에 서툴러서는 속도와 스펙의 시대에 대한 점잖은 불평을 늘어놓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기 십상이다. 반대 명제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움’ 역시 점유의 라인에 서 있음을 알기에 ‘점유하라’는 구호도 ‘비우라’는 잠언도 속이 가득 차 보일 뿐이다. 

   뭉클한 것은 ‘사이’일까? 이문재 시인이 최근 발표한 시의 내적 실재 안에는 ‘사이’가 살고 있다. 속도와 점유의 계산으로는 당최 잇속이 남을 것 같지 않은 비경제적 발화를 이 시의 주체는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4연의 짧은 시지만 전언을 간취하면 더 간소해질 수 있는 이 시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 역시 각 연의 사이다. 형식이 내용을 담는 봉투가 아니라 침전된 내용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있는 모양이다. 비슷한 전언이 거듭 진술되고 있는 것 같지만 각 연 사이에는 넓은 공극(孔隙)이 있다. 그리고 그 공극을 통해 내용의 점유와 메시지의 속도를 모두 양분으로 삼는 시적 진실 하나가 자라난다. 다니엘 아라스가 살아 있다면 무릎을 칠 디테일 하나가 바로 거기에 살고 있다.

   왜 하나의 전언에 3연이 필요했을까? ‘사이’의 서파급(序破急)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1연은 시계(視界)의 역설이다. 빛이 작용이 아니라 반작용의 산물이듯 점유는 물체가 아니라 공간의 산물임을 시계의 차원에서 고스란히 그리고 태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1연이다. 알갱이들의 숫자로는 점유율로 뒤질 것 없는 저 모래의 세계에서 홀연 공간이 일어선다. ‘사이’의 시계가 우리의 공간지각 능력을 뒤바꾼다. 다수가 아니라 ‘사이’가 점유한 공간이 사막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2연은 점유의 역설이다. 어쩌면 저리도 자명한 사실관계를 우리는 쉽게 잊고 있었던 것일까? 공극이 사막의 다수다.

   3연은 존재의 역설이다. 그렇기에 통렬하다. 점유와 비움의 자리를 바꾸는 번거로움도 필요없이 우리는 ‘사이’ 때문에 사는 것이다. 존재자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존재자에게 ‘사이’를 다른 형식으로 낳아주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자신의 한도 끝도 없는 존재 이유의 스펙으로 알속을 챙기며 버젓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 하나씩을 분양받는 사이에 어느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자가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이’가 존재자를 부양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그렇기에 4연은 마침내 속도의 역설이다.

   시도 속도와 점유의 편에 서기도 하는 이즈음 ‘사이’와 나는 아는 사이로 남고 싶다.


  조강석,『문학동네』 2012년 여름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는 구름이 있다고 말하던 그대의 두 눈이 깜빡이던
사이,
그리고 그 찰나가 떨어트려놓은 또 다른 오랜 시간 사이...지구가 달을 그리워하는 만큼의 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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