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일주간

어떤 경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즐거운 생일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너머 막 옷 갈아입는 중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 너머 무한의 헛것이 보인다 내가 사진 찍어준 친구들 지나가다 보면 아직도 그 자리에 김치이, 하고 굳어 있다 내 얼굴에는 굵은 소금에 좌악, 긁힌 상처가 있다 십 년 만에 땀을 닦은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나랑 헤어진 여자는 아직도 그 카페에서 떨리는 손으로 식은 커피잔을 쥐고 있다 나는 쏟은 물 위에 유서를 썼고 서명까지 남겼다 죽어버려라, 라는 말이 증발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가벼움에 취했다 나는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둘 중에 하나를 십 초 이내에 선택할 줄도 안다 나의 표정은 도시 게릴라의 마지막 항전 기록과도 같다 그리.. 더보기
생일주간 얼굴 없는 아버지에게 모우터싸이클을 타고 가을의 환한 햇빛 속을 달려나갈 때 나는 녹슬어버렸다 그건 당신의 이마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것인데 당신은 얼굴이 없으므로 그 돌은 명중할 수 없다 오늘 나의 생일에 창문마다 불빛 하나씩 내다 건 거리의 끝에서 자욱한 새벽 안개 속에서 내가 당신의 어두운 윤곽으로 거리를 나올 때 당신은 나에게 무어라 잔등 두드리겠는가 나의 물그릇은 아침에 버리는 물 속에 함께 내버려져 저녁 가을 강이 붉게 녹스는 것을 도와 주고 바다가 소금을 결정할 때 손쉽게 모여 소금이 될 것이다 한낮 가득한 돌들이 무거워지는 낯익은 소리들 자욱한 소리들 모우터싸이클을 타고 햇빛의 밖에서 저녁으로 달려올 때 당신은 아직 얼굴 없는 산이다 불타는 가을 산이다 「생일주간」 이문재 詩集『내 젖은 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