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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다녀왔다 - 사유의 방 사유의 방(思惟之房). 생각이 포괄적인 인식의 기본개념과 범위를 정의한다면, 사유는 좀 더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건 생각이고, 그 사람의 그리움이 나의 의식적 존재의 의미로 와 닿는다면 사유다.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고 말하며 존재의 증거를 들었을 때 - 번역은 생각으로 되어 있지만 - 그 의미가 사유에 가깝다.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 미국 휴스턴)과 비교해 본다면, 두 곳 모두 같은 공간적 그리고 공감각적 경험을 체험하게 하지만, 로스코 채플이 색을 통한 미학적 엄숙함의 경험을 선사할 때 '사유의 방'에서 우리는 시간을 통한 철학적인 엄숙함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반가부좌를 틀고 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 더보기
7월의 詩: 침묵 바이러스 나는 말비듬이 떨어진 당신의 어깨를 털어주었다. 당신은 말들을 두 손 가득 담아 내 몸에 뿌려주었다. 눈을 맞은 나무처럼 꼿꼿이, 이 거리에 함께 서 있던 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말을 상자에 담아 당신에게 건넸을 때, 당신은 다이얼을 돌려가며 주파수를 잡으려 애를 썼 다. 라디오 앞에 귀를 내어놓은 애청자처럼, 나는 당신의 사연을 읽어주는 DJ가 됐을지도 모 를 일이다. 그때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몸져 누웠을 뿐.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진 체벌이었을 수도 있다. 죄를 입증하는 것보다 결백을 입증 하는 데에 말이 더 무력한 탓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거리에 서 있었다. 줄기만 남은 담쟁이들조차 시멘트벽을 부둥 켜 안고 말없이 열렬히 .. 더보기
好雨時節 비가 오던, 어느 하루 Elvis Presley - Anything That's Part of You I memorize the note you sent Go all the places that we went I seem to search the whole day through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I kept a ribbon from your hair A breath of perfume lingers there It helps to cheer me when I'm blue Anything that's part of you Oh, how it hurts to miss you so When I know you don't love me anymore To go on nee.. 더보기
이 봄 詩 둘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면 내리네 비는 바람 따라 소복이 밤에 내리고 소리도 없이 세상을 적시네 들길은 검은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흐르는 배의 불빛만이 빛나네 새벽에 붉게 젖은 있는 곳을 보리니 금관성(錦官城) 꽃들이 활짝 피었네 杜甫, 「春夜喜雨 (춘야희우: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봄가뭄이 심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비가 내려 온 도시를 적셨다. 이 어찌 고맙고 기쁘지 아니한가.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이 여물질 않고 민초들의 생활이 궁핍해질 것인데, 사직을 하고 금관성(錦官城.. 더보기
6월의 詩: 꽃차례 천체는 현존합니다 질량이 불변하듯이 가장자리에서부터 혹은 위에서부터 피어나듯이 꽃 한송이의 섭리는 불변합니다 들여다보면 항상 비어있는 지상 타인의 눈물과 핏물을 받아 마시며 제가 끌려 다니는 동안도 행성은 타원의 궤도를 돌고······ 이 한 몸과 마음이 때때로 추레하여 가슴에 별 하나 품고 살아가게 하듯이 슬픔의 벼랑 끝에서 곱게 핀 당신을 찾아내듯이 꽃, 한 송이 천체여 이승의 기나긴 밤에도 당신과 맺어져 있어 저는 살아 있는 것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꽃차례」 이승하 詩集『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세계사, 1991)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삶이 충만하기를 꿈꾼다. 그 충만함이 만족과 행복, 안락 혹은 편안함으로 치환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인간다움에 대한 .. 더보기
5월의 詩: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더보기
4월의 詩: 찬란함은 더 늦게 올는지 모른다 찬란함은 더 늦게 올는지 모른다. 꽃봉오리를 맺은 장미는 작년에도 귓볼을 붉혔었다. 강가에서 모래성을 쌓던 아이들이 자라나 블루 진 차림으로 겉멋을 부리지만 정작 희망은 그전의 낱말일는지 모른다. 숲은 아직도 울창한가 짚지붕 처마자락에 매달린 고드름의 카랑카랑한 차가움은 기억 저편에서 빛난다. 미상불 잃을 것 없는 여인이 봄 화장을 하는 동안 시간은 소리없이 하르르 지고 살아서 백년, 죽어서도 백년인 주목나무가 둥치만 남겨진 채 산그림자 속에 묻혀간다. 찬란함은 아무래도 더 늦게 올는지 모른다. 「찬란함은 더 늦게 올는지 모른다」 신중신 詩集 『카프카의 집』 (문학과지성, 1998) 찬란(燦爛), 고풍스러운 담벼락에 기댄 먼 옛날을 기억이었거나 은여울 호수 위의 빛처럼 눈부시게 빛이었거나. 그 때를 기억.. 더보기
그곳에 다녀왔다 - Gateway Arch National Park GATEWAY ARCH NATIONAL PARK Gateway Arch National Park은 미국 미주리주(Missouri)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다. 공원의 전신은 1935년 지정된 제퍼슨 국립 확장 기념관(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이었고, 그 설립 목적은 (1) 루이지애나 매입(1803년)과 미국 탐험가(루이스, 클라크 탐험)와 개척자들의 서부 이동, (2) 미시시피강 서쪽의 최초 시민정부, (3) 드레드 스콧 사건(1856년 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간 의 소송 (Dred Scott v. John F. A. Sandford)을 말한다. 흑인 노예였던 드레드 스콧이 주인이었던 샌드퍼드에게 본인이 주인을 따라 노예폐지주에 살았기.. 더보기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씨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3월의 詩: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죽은 사람이 살다 간 南向을 묻기 위해 사람들은 앞산에 모여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소년들은 잎 피는 소리에 취해 山 아래로 천 개의 시냇물을 띄웁니다. 아롱아롱 山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흰나비를 잡으러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저 아래 저 아래 개나리꽃을 피우며 활짝 핀 누가 사는지? 조금씩 햇빛은 물살에 깎이어 갑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리도 깎이어 물 밑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로 부서집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흰 모래 사이 피라미는 거슬러오르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그대를 위해 사람들은 앞산 양지 쪽에 모여 있습니다. 「흰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나비로 날아와 앉고」 신대철 詩集『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지성, 1977) 어떤 날들이 있었다. 지난한 시간들, 몇 개의.. 더보기
이 봄 노래 둘 구름이 태양을 가릴 지라도 (Und ob die Wolke sie verhülle) 군둘라 야노비츠 - 구름이 태양을 가릴 지라도 (Und ob die Wolke sie verhülle) 군둘라 야노비츠가 부르는 이 아름다운 노래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의 3막짜리 오페라, 3막 2장에서 주인공 사냥꾼 막스의 연인, 아가페가 부르는 카바티나다. 사랑과 명예에 목을 맨 나머지 악마와 거래를 하는 연인 막스에 대한 불안감과 그의 승리를 기원하며 제단에서 기도를 드리며 부르는 이 노래는 이 오페라의 절창이다. Und ob die Wolke sie verhülle Und ob die Wolke sie verhülle, Die Sonne bleibt am .. 더보기
2월의 詩: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