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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극장

어느 봄날의 일기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나를 그는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나지 않는 그의 얼굴, 다만 오랫동안 서가의 책들을 어루만지던 그 손가락들만이 내 기억에 남아 그를 지킬 수도 있고, 어느 날 환한 햇살을 안고 선 검은 머리카락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던 그녀의 머리카락만을 기억할 수도 있다. 기억은 내가 안고 싶은 것도 손에 쥐고 언제나 매만지고 싶은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런 제멋대로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치환되면 그것은 한없이 얇은 구름 한 장 위에 발을 내딛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저 넑고 깊은 슬픔의 낭하로 언제든 떨어질 거라는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 향기, 냄새, 바람을 따라 떠도는 이런 종류의 기억은 더더욱 그 슬픔의 깊이를 더한다. 라일락 꽃 향기, 담배 향기, 그리고 그 냄새를 따라 오는 소리들. 눈감고 코를 열고 귀를 열고 바람에 나를 맏긴다. 그런 슬픔이다, 그대를 기억하는 일은. 남아 있어도 바람을 따라 사라질 그런 기억을 부여잡는 어느 봄날의 일기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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