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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사전

이 봄 詩 둘



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隨風潛入夜 (수풍잠입야)
潤物細無聲 (윤물세무성)
野徑雲俱黑 (야경운구흑)
江船火獨明 (강선화독명)
曉看紅濕處 (효간홍습처)
花重錦官城 (화중금관성)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면 내리네
비는 바람 따라 소복이 밤에 내리고
소리도 없이 세상을 적시네
들길은 검은 구름으로 어둡고
강 위에 흐르는 배의 불빛만이 빛나네
새벽에 붉게 젖은 있는 곳을 보리니
금관성(錦官城) 꽃들이 활짝 피었네

 


杜甫, 「春夜喜雨 (춘야희우: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봄가뭄이 심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비가 내려 온 도시를 적셨다. 이 어찌 고맙고 기쁘지 아니한가.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이 여물질 않고 민초들의 생활이 궁핍해질 것인데, 사직을 하고 금관성(錦官城: 쓰촨성 청두시의 옛 지명)에 지내던 두보(杜甫, 712-770)는 가뭄 끝에 내린 반가운 비를 보고 그 감흥을 시로 남겼다. 그 또한 생의 대부분을 객지를 떠돌며 궁핍과 병마와 씨름하며 살았기에 한가한 선비의 낭만이 아니라 진심어린 긍휼의 마음으로 비를 노래하고 삶을 노래한 것이다. 生의 고마운 단비는 바람을 따라 밤에 소리없이 들어와 나를 촉촉히 적셔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단비는 내리지 않겠는가.

2009년작 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은 배경을 두보초당이 있는 청두시에 두고, 주인공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영화의 제목  <호우시절> 또한, 두보의 시 첫구절에서 따왔다. 2008년 쓰촨 대지진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폐허의 도시에서 재회한 두 남녀의 기억이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때를 알고 오는 비처럼, 그 사람이 다시 온다면...'이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를 통해서 천년이 넘은 두보의 시가 여전히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진실한 감정, 가뭄의 단비 혹은 우리의 삶에 내리는 단비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을 되짚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處世若大夢(처세약대몽)
胡爲勞其生(호위노기생)
所以終日醉(소이종일취)
頹然臥前楹(퇴연와전영)
覺來盻庭前(각래혜정전)
一鳥花間鳴(일조화간명)
借問此何時(차문차하시)
春風語流鶯(춘풍어유앵)
感之欲歎息(감지욕탄식)
對酒還自傾(대주환자경)
浩歌待明月(호가대명월)
曲盡已忘情(곡진이망정)



세상을 사는 것이 꿈과 같으니
어찌 삶을 고생스럽게 살겠는가
그러기에 하루 종일 취하여
앞 기둥에 쓰러져 누웠노라
깨어나 뜰 앞을 문득 보니
새 한 마리 꽃 속에서 울고 있구나
묻노니 지금이 어느 계절인고
꾀꼬리 소리가 번지는 봄이라 하네
봄에 취해 탄식하려니
술 단지가 절로 비어 기우는구나
큰 소리로 노래하며 달을 기다리노니
그 노래 가락 끝나자 온갖 정을 잊었노라


李白, 「春日醉起言志 (춘일취기언지: 봄날 취해 자다가 일어나 내 뜻을 읊다)」

 




달의 시인, 이백(李白. 701 ~ 762)이 지은 이 詩는 삶의 無我와 虛無, 노장사상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다. 삶은 커다란 꿈이고 그러니 무엇하러 힘들고 괴롭게 살것인가. 취해서 잠들었다 깨어보니 봄은 꽃과 새와 함께 흘러가고 그 정취에 다시 술에 취해 부른 노래가 끝나니 모든 것이 사라져가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푸쉬킨의 詩가 미래에 중심을 둔 삶의 全言이라면 이백의 詩는 현재의 삶을 비우고 가볍게 해서 유유히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잠자다 깨어난 봄밤, 우두커니 앉아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그 안에 있는 건......



 

최태현 해금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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