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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길목

그곳에 다녀왔다 - 블랙 힐스, 사우스 다코타 (1)

세상이 완벽했던 시절
- 당신에게 비치는 아침 햇살

 

 

 

 

 

세상이 완벽했던 시절 우리는 그 세상에서 행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불만은 지상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만들기 시작했

의심은 날카롭게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의심이 마음의 고리들을 파멸시켰을 때,
온갖 사악한 생각들이

뛰어들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를 파괴했다
영감을 위해, 삶을 위해—

질투의 표식, 
두려움, 탐욕, 질투, 증오의 표식들, 빛을 꺼라.
어느 누구도 손에 표식이 없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시작한 곳, 

우리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공생하는지 잊은 후로 

우리는 더 이상 살 곳이 없었다.

넘어진 사람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쌍히 여기고
담요를 나누어주었다.
사랑의 불꽃이 빛을 밝혔다.
그 빛은 어둠 속에 열린 입구를 만들었다.
모두 함께 사다리를 만들었다.
바람의 부족 사람이 먼저 다음 세계로 올라갔고,
그리고 다른 부족, 그 부족의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
그리고 다음의 후손들이 그 길을 따랐다, 그 영원한 시간 속—
지금 당신에게 비치는 아침의 햇살 속으로

 

조이 하조「세상이 완벽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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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the world was perfect, and we were happy in that world.
Then we took it for granted.
Discontent began a small rumble in the earthly mind.
Then Doubt pushed through with its spiked head.
And once Doubt ruptured the web,
All manner of demon thoughts
Jumped through—
We destroyed the world we had been given
For inspiration, for life—
Each stone of jealousy, each stone
Of fear, greed, envy, and hatred, put out the light.
No one was without a stone in his or her hand.
There we were,
Right back where we had started.
We were bumping into each other
In the dark.
And now we had no place to live, since we didn’t know
How to live with each other.
Then one of the stumbling ones took pity on another
And shared a blanket.
A spark of kindness made a light.
The light made an opening in the darkness.
Everyone worked together to make a ladder.
A Wind Clan person climbed out first into the next world,
And then the other clans, the children of those clans, their children,
And their children, all the way through time—
To now, into this morning light to you.

 

 

Joy Hajo 「Once the World Was Perfect」 

 

 

미국 원주민 문예부흥 운동의 2세대에 속하는 시인, 조이 하조(Joy Hajo)는 그녀의 선조들의 잃어버린 낙원과 그 비극을 희망의 시로 노래했다. 바람과 꽃과 하늘과 산으로 사라져간 그녀의 선조들은 진정 다음 세상을 꿈꾸며 사라져갔을까. 그리고 그들의 내일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시간은 상대적이다. 새로운 세월이 누구에게 희망과 기대를 가져다 줄 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과 비극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천만명을 헤아리던 미국의 원주민은 19세기 말에는 30만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숫자의 차이에 대한 의미는 그들에게 그만큼의 고난의 시간을 의미했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고 전후 재건이 시작되면서 정부의 시선은 서부로 향했다. 프런티어(Frontier) 개척, 영토확장을 통해 동부로부터 시작된 문명의 국경을 미시시피강에서 서부로 확장해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알칸사스로 확장한 미국 정부는 골드러쉬로 개척이 진행된 캘리포니아와 오레곤  사이 서부 대평원 (아래 지도의 짙은 노란색 지역)의 미개척지에 눈을 돌렸다. 그것은 당시 서부 대평원에 살고 있던 20만명의 원주민에게는 비극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들은 서부로 개척해가는 미국 정부 때문에 계속해서 서쪽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합법적인 조약을 통해 원주민과 합의를 했다지만 힘의 불균형에 의해 대부분 반강제적이였다. 그렇게 밀려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과 미국 정부가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미정부는 원주민의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자 문화적, 종교적으로도 신성시 여겨온 버팔로를 전문 사냥꾼들을 이용해 대량 학살하거나 그들의 서식지에 불을 놓아 번식을 차단해 원주민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런 결과는 원주민들을 자극했고, 그런 자극으로 인한 충돌은 미국의 정복전쟁의 빌미가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1862년 미네소타주에선 원주민 영토분쟁으로 수우족과의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 때문에 일어난 전투에서 패한 수우족은 다시 서부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미네소타의 서쪽은 네브라스카 준주였는데 이 지역이 블랙 힐스였고 이후 지금의 노스 다코타와 사우스 다코타 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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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의 주(州)의 이름인 다코타(Dakota)는 수우(Sioux)족의 본래 이름이다. 사용하는 원주민 언어의 방언에 따라 다코타(Dakota), 라코타(Lakota), 나코타(Nakota) 세 부족으로 구성되었던 그들은 처음으로 이 땅을 차지한 프랑스인들에 의해 수우(Sioux)족으로 불렸다. 그후 1500년경부터 블랙 힐스를 포함한 지금의 다코타 지역에 정착한 수우족은 그곳을 세계의 중심이자 위대한 정령이 깃든 성지란 의미로 He Sapa(검은 땅)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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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Black Hills Map: 블랙 힐스는  현재 블랙 힐스 국립 자연림 (Black Hills National Forest)로 지정되어 있고 사우스 다코타 주의 서쪽과 와이오밍 주의 동쪽 일부에 걸쳐져 있다

 

 

미네소타에서 밀려난 수우족은 1868년 미국 연방 정부와의 조약을 통해 블랙 힐스에 대한 거주 독점권을 보장 받았지만, 1874년 블랙 힐스에서 금이 발견되자 개척자들이 몰려들면서 다시 충돌이 생겨났다.  이에 미국 정부는 수우족에게 동쪽 400km 떨어진 새로운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도록 통보하였고 수우족은 이를 거부하고 그들의 땅을 사수하기로 결정했다. 수우족 오글라라 부족의 전사 타슝카 위트코(Crazy Horse, 성난 말)와 훙크파파 부족의 추장  타탕카 이요탕가(Sitting Bull, 시팅 불)의 활약으로 1876년 3월 조지 크룩 장군이 이끌던 연방군을 물리치고, 같은 해 6월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mstrong Custer) 장군이 이끄는 연방군 주력부대인 제 7 기병연대를 전멸시켜 연방정부군을 향한 마지막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전투는 영화 <아바타>에서 지구인과 원주민, 나비족의 전투장면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더욱 거세진 연방군의 공격에 후퇴를 거듭하다 항복하기에 이른다. 1877년 항복한 타슝카 위트코(성난 말)는 같은 해 원주민 보호소에서 짐승에게 채우는 덫을 채우려는 군인에게 저항하다가 단검에 찔려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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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틀 빅혼 전투, 2. 타슝카 위트코(Crazy Horse, 성난 말), 3. 타탕카 이요탕가(Sitting Bull, 시팅 불)

 

 

이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1889년에 원주민들은 그들이 처한 슬픈 현실을 애도하고 부족의 단결과 새로운 삶을 통한 희망을 찾기 위해 큰발(Big Foot), 워보카(Wovoka), 차는곰(Kicking Bear) 추장들을 중심으로 '유령춤 (Ghost Dance)'이라는 영적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기독교와 원주민 토속종교가 융화된 유령춤 운동은 종교적인 색채를 띄면서 그들의 구세주가 나타나 이 핍박의 세월에서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원주민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에 연방 정부는 유령춤을 금지했고 그 주범으로 지목된 타탕카 이요탕가(시팅 불)는 체포과정에서 살해되었다. 이 사건 2주 후 1890년 12월 29일에는 정부의 박해 때문에 유령춤 운동을 포기한 큰발 추장을 포함한 350명의 라코타 부족원이 오글라라 라코타 부족의 붉은구름 (마흐피야 루타) 추장의 부족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이동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제7 기병대원 500명과의 사소한 다툼으로 시작된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사우스 다코타 남서부에 있는 운디드니(Wounded Knee)에서 일어난 이 사건으로 350명의 라코타 부족원 중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 290명이 일방적으로 학살되었다. 미군은 66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당시에는 양측이 대등하게 대립한 전투(Battle)라고 기록되고 미군측 병사들에게는 명예훈장까지 수여되었으나 이후 이 사건이 미군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라는 진실이 규명되고 '운디드니 전투'가 아닌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로 정정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은 <운디드니의 잃어버린 새: 라코타의 영혼 Lost Bird of Wounded Knee: Spirit of the Lakota>, <운디드니에 나를 묻어주오>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TV Series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주민들의 역사가 비극의 아이러니로 남아있는 곳, 그 비극보다 더 아름다운 산과 들과 하늘이 열려있는 곳. 

블랙 힐스(Black Hills) 혹은 검은 땅, 그리고 나는 지금 내게 비치는 햇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