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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빈 의자


길쭉한 목을 늘어뜨리고 해바라기가 서 있는 아침이었다
그 곁 누가 갖다놓은 침묵인가 나무 의자가 앉아 있다
해바라기 얼굴에는 수천 개의 눈동자가 박혀 있다
태양의 궤적을 좇던 해바라기의 눈빛이 제 뿌리 쪽을 향해 있다
나무 의자엔 길고 검은 적막이 이슬처럼 축축하다
공중에 얼비치는 야윈 빛의 얼굴
누구인가?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쓸어내린다
가을이었다
맨 처음 만난 가을이었다
함께 살자 했다



                                      「빈 의자

                                        문태준 詩集『가재미』(문학과지성,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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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해바라기를 갖고 싶다, 어느 빈 하늘에 걸려있는
태양이라도 따다 볕바른 양지를 만들어 안고 싶다
너는 외가집 처마에 떨어지는 낙숫물 떨구는 소리로 
내게 말했다,
점점 멀어지는 기억만큼

이젠 들리지 않는 그 소리를 들고
그렇게 그렁그렁한 눈으로

I only have eyes for you by Friedrich Gulda Trio


           
Friedrich Gulda (P)
J.A. Rettenbacher (B)
Klaus Weiss (DS)
Album - Friedrich Gulda / As You Like It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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