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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9월의 詩: 가을 기차

 

 

 

 

들국 앉은 모습이 설핏 종지부 같다.

들국 가느다란 모가지 너머 저

빈 들 먼 끝머리

은빛 기차 한 가닥 천천히 가고 있다.

생각하면 엊그제

개나리 목련 피었다 서둘러 지고

라일락 진달래 아카시아 패랭이 분꽃 다알리아 명아주꽃 장미

나팔꽃이 또 줄지어 겨우겨우 따라왔다.

짧고 아름다웠던 보폭이여

어릴 적엔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넜다.

아이들의 어린 동생들도 다 빠지지 않고 건너면

오, 꽃 자욱한 메밀밭

희고 자잘한 기쁨이 가슴에 들에 많았다.

그렇게 봄 가고 여름 간 것일까.

생각하면 엊그제

더 많이 어둠고 소란스러웠던 날들은

발목을 풀고 떠난 물소리 같은 것.

어느 날은 문득 뒤가 비어 있고

죄 없고 눈물 없는 것들만이 뼈처럼 이어져

이 큰 둘레의 가을을 건너가고 있다.

들국 앉은 모습이 설핏 종지부 같다.

 

 

 

「가을 기차」
  문인수詩集『뼈 』(문학과지성, 1992)

 

 


 

 

나는 모르겠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 내가 왜 이렇게 슬픈지 / 오래된 시간에서 흘러온 이야기가 / 내 생각에서 나가지 않네 1)

하지만, 너는 나에게로 오는 길을 찾겠지 - ? / 보렴 내가 끝낼 시간이 온다 / 숲에는 꿈의 짐승들로 가득하다. /  그리고 그 밑에 있는 나는 여기의 사람이 아니다 - / 나는 모든 것을 주리라 / 네가 나를 찾을 수만 있다면 2)

버려졌지만, 외롭지는 않았고 / 흔들렸지만, 짓이겨지는 않았다오 / 아직 성스러운 빛이 / 나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에는 3)

오라, 우리 대화를 나누자 / 말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4)

 

 

 

1) 로렐라이하인리히 하이

2) 나는 시끄러운 그늘 밑으로 간다 알렉산더 사버 그베르더

3) 안녕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

4) 오라 고트프리트 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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