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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길목

그곳에 다녀왔다 - 봉황산 부석사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오르는 길

 

천왕문

 

 

 

서툴게 온 발걸음,  기억을 거슬러 온 자리

너는 무엇이 되어 그시간을 지켜왔는가

오래전 푸른 靑春이 남겼던 사진이 나를 가르켰던

그 길의 끝...

 

 

부석사 천왕문

 

 

11월의 부석사는 쌀쌀했지만 따뜻했고 포근했다. 오랜 만의 기억, 뒤돌아본 그 길로 거슬러 오르는 기억. 모든 과거의 기억을 잊고 현재를 사는 인간의 일을 따라 나도 나를 잊고 내가 남겼던 한 장의 사진으로 이곳을 기억했었다. 과거를 따라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몇 개의 일들 중 내가 각인했던 그곳, 그때의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회전문에서 바라본 범종각 (회전문은 2013년 복원되었다)

 

 

범종각에서 바라본 안양루

 

 

안양루에서 바라본 석등과 무량수전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산지가람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런 산길을 따라 오르는 동선에 있다. 그 동선을 따라 계속되는 액자식 풍경들. 풍경 속의 풍경을 따라 가다 보면 화엄(華嚴)이 인도하는 공간으로 다다르게 된다.

 

 

범종각

 

 

범종각의 기둥들: 원목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기둥이 가져다주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배열이 아름답다.

 

 

안양루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의 글씨이다)

 

 

안양루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풍경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가람의 걸물들에도 있지만 백미(白眉)는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있다. 가람들 너머 겹겹이 중첩되어 펼쳐진 풍경, 수묵화처럼 거리에 따라 명암이 첩첩이 쌓여있는 풍경은 자연이 가져다 주는 산수화, 그 자체이다. 

 

 

 

무량수전 앞 마당에서 본 안양루

 

 

무량수전 (無量壽殿: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무량수전과 안양루, 석등

 

 

부석 (浮石)

 

 

 

선묘(善妙)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바위가 되어 여기 자리 잡았다. 그 바위는 바람과 비에 깍여나가 흩어지더라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거대한 마음이다. 그 푸른 의지는 세월에 흩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에 무게를 올려놓는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마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그리운 부석사

   정호승 詩集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창작과비평, 1997)

 

  *마지(摩旨):부처에게 올리는 밥

 

 

조사당으로 올라오는 길

 

 

 

부석사를 돌아 세속으로 걸어나오는 길, 나는 내 마음을 안고 있던 손을 잡았다. 죽음과 사랑을 약속하는 하얀 손, 비루하고 여윈 삶의 틈새 안에서 영원하지 않은 나의 삶을 들어올리는 거대한 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자각, 그리고 그 안에서 남은 시간이 약속하는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