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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12月의 詩: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中에서 어제는 오늘의 내일. 그 어디쯤에선가 문득 걷던 길을 멈춰서서 나는 오늘의 일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시간이 쌓아놓은 나의 生活이 관계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을 곰곰히 되짚어 본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과 어제의 기억들이 오늘의 기억들에게 찬찬히 시간의 忍苦를 이야기해주는.. 더보기
은행잎을 노래하다 그래도 열 손가락으로 헷갈리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 세다 세상을 뜬다는 것 얼마나 자지러진 휘모리인가. 갓 뜬 노랑 은행잎이 사람과 차(車)에 밟히기 전 바람 속 어디론가 뵈지 않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갑자기 환해진 가을 하늘 철근들 비죽비죽 구부정하게 서 있는 정신의 신경과 신경 사리로 온통 들이비쳐 잠시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고 길 건너려다 말고 벗은 몸처럼 서 있어도 홀가분할 때, 땅에 닿으려다 문득 노랑나비로 날라올라 막 헤어진 가지를 되붙들까 머뭇대다 머뭇대다 손 털고 날아가는 저 환한 휘모리, 저 노래! 「은행잎을 노래하다」 황동규 詩集『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2003) 어떤 우연이 나에게,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랗고 둥근 기다림을 줄 것인가 그 둥근 기다림 속 너를 환한.. 더보기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에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의 눈 「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먼 곳에서 눈 소식을 듣는다. 오래지 않은 저 사진의 기억에도 눈이 있었다. 사월의 어느 날, 봄밤 한없이 내리던 눈, 그 안에 따뜻하게 내려앉던 달빛과 검은 밤의 공기. 더보기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 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姿 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中에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