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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1월의 詩: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詩集『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오늘은 어제의 내일, 그리고 나는 지금 노을이 지는 여기, 오늘에 있다. 오늘은 오늘이고 또 내일이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내가 아니며 또한 나이기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허공에 올려놓는다. 그 고요한 순간, 찰나의 진공. 진공 속에선 말을 하지 않아도 너를 들을 수 있어 네 뜨거운 심장의 소리와 마음과 눈물의 파동을 전해 듣는다. 어디로 갈까. 12월의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봄날을 떠나보낸 차가운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의 너는 봄을 기다리고 다른 길과 길 사이 다시 걸어가야할 길을 짐작하고 있다. 어제는 어땠나요? 감각은 오늘에만 있어요. 어제는 바람에 흩날려갔네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노래를 해주세요. "오「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때가 되었다! 닻을 올리자! 우리는 이 고장이 지겹다, 오「죽음」이여! 떠날 차비를 하자! 하늘과 바다는 먹물처럼 검다해도, 네가 아는 우리 마음은 빛으로 가득차 있다. *" 너의 노래가 해가 지는 바다에 퍼져나가 허공에 쌓인다. 그것이 새길이 될거야, 너의 독백이 묵묵히 노을 속으로 스며든다. 

 

* 보들레르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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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皆知美之爲美也, 惡巳/皆知善, 此其不善已/有無之相生也 難易之相成也 長短之相形也 高下之相盈也 音聲之相和也 先後之相隨也 是以聖人居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而弗治也 爲而弗侍也 成而弗居 夫唯弗居也 是以弗去也

 

천하가 모두 아름다움을 알기를
아름답다고 여기면, 추할 따름이다.

모두가 좋다고 알면,
이는 그 좋음이 아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를 형성해내고,
길고 짧음이 서로를 만들어내고,
높고 낮음이 서로를 메우고,
음과 소리가 서로 어우러지고,
앞과 뒤가 서로를 뒤따른다.

때문에 성인은 하고자함이 없는(無爲) 일에 머무르며,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은 만들어지지만 다스려지지는 않으며,
하더라도 길러주지 않아서,
다 자라면 머무르지 않는다.
대저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 노자(도덕경) 죽간본 9장 - 통행본 2장, 백서본 68~70장

 

 

 




 


 

 

Khatia Buniatishvili: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2, Op.18 in C minor: Adagio Sostenu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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