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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11월의 詩: 처용 3장

 


 


1
 
그대는 발을 좀 삐었지만
하이힐의 뒷굽이 비칠하는 순간
그대 순결은
型이 좀 틀어지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내는 나의 노래 나의 춤이다.
 
 
2
 
6월에 실종한 그대
7월에 산다화가 피고 눈이 내리고,
난로 위에서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다.
서촌 마을의 바람받이 서복쪽 늙은 홰나무,
맨발로 달려간 그날로부터 그대는
내 발가락의 티눈이다.
 
 
3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바다에서 온다.
생선가게의 납새미 도다리도
시원한 눈을 뜬다.
그대는 나의 지느러미 나의 바다다.
바다에 물구나무선 아침 하늘,
아직은 나의 순결이다.
 
 
처용 3장」 
  김춘수 詩選集『처용』(민음사, 1974)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구름이 있던 근처라고 했는데
그랬는데,
 
기억과 시간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스쳐지나가는 풍경 속에 그대가 있을까
있으면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기억이 지워버린 얼굴을
다시 그리면
그대는 나의 노래, 나의 순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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