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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히 생각해보아야할 문제
詩와 哲學을 위한 話頭, 2020
운율(韻律)
詩에서 음성조직이 이루는 수사적이고 미학적인 효과. 운과 율격을 통칭하는 소리의 일정한 규칙적 질서.
내재율, 외형률(음수율(글자수의 반복적 배치), 음보율(반복적인 끊어읽기), 음위율(라임), 음성률(음의 장단, 강약, 청탁, 고저를 이용))
삶의 운율.
은유(隱喩)
미메시스(mimesis). 모방의 여러 형태들이자 인간의 감정, 성격, 심리를 흉내낸 것. 재현과 모방.
예술의 창조적 근원, 메타포. 모방의 은유는 인간의 실존적 범람으로 인한 인간의 정수의 감수성에 대한 투영.
은유는 깊은 사색을 통해서만 발현되는 영혼의 깊은 샘물(詩學)
은유와 환유, 선택과 결합.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보기.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
우연(偶然)
사전적 의미 - '뜻'하지 않게 생겨난 일. 어떤 사상이나 인과 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성질을 가진 것.
'뜻'이란 말이나 글 또는 어떠한 행동으로 나타내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연은 말.글.행동으로 나타나도록 의도하지 않게 생겨난 일이라고 풀어쓸 수 있겠다. 의도, 뜻, 의지가 없는 무상의 상태. 그리고 그 무의지로 얻어진 결과물. 우연의 일치.
필연(必然)은 '사물의 관련이나 일의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뜻. '반드시'. 이 확정적이도 오만한 단어의 문제는 주체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누가 그렇게 정해놓았던 것인가 하는. 운명, 신, 계시, 팔자. 모든 사상의 근원적 질문 중의 하나가 될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연은 필연을 가장한 오해. '우연히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는 논리적으로 필연'이라는 <미래시점 우연명제의 문제>는 명제로서의 상황은 참 또는 거짓이어야만 하고 그 명제가 참이기 위해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의 예견은 '필연'이여야 한다는 Paradox. 예를 들어 나는 2020년 1월 1일 런던에 있을 것이다 라는 명제가 참이기 위해선 내가 런던에 가야만 하고 거짓이라면 나는 런던에 있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명제의 선택에 의해 내의 자유의지에 대한 확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우연의 문장은 그 명제가 참이든 거짓이든 논리적인 세계에서의 나는 '필연'적으로 내 존재의 위치를 확정해야만 한다는 것.
모든 철학의 근원적 질문과 기저 중의 하나, 자유의지. 우연과 필연의 연결고리. 우연의 바다. 필연의 반대말은 우연이 아니라 자유일수도. 하지만 자유의지는 내가 가진 의도와 뜻을 발현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우연은 필연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연과 필연, 그리고 자유는 상호보완적인 의미로서 주체의 현현을 도운다. 우연과 필연은 의미와 무의미한 삶의 바다에서 상황적 가치를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적 현현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유영에서 태어났을 때 잃어버렸던 삶에 대한 스스로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어제와 오늘의 글
63.
'마지막'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한하다. 끝일 수도 있고 시작일 수도 있으며 완결점일 수도 혹은 종결적일 수도 있다.
애초에 이렇게 시간을 쪼개고 날짜를 나누고 연도를 나누어 시작과 끝을 만든 이유는 삶의 유한함에 대한 과학적 헌사이다.
유한한 시간에 대한 무목적인 삶의 가치를 숫자로 바꿈으로써 시간의 대한 의미를 유한적으로 해석하도록 해준.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의 어제이다.
74.
기다림이 무언가가 어디에 있어야하는 질서라면, 우연은 그 질서를 숨쉬게 할 것이고 운율과 은유가 기다림이 있는 삶을 더 아름답게 할 것이리라.
222.
플랭에르. 대기 속에 빛나는 그림자. 실제하기도 실제하지도 않는 그런 윤곽으로. 하지만 아름다움으로.
355.
내 뒤안의 고요한 하루. 어떤 마지막 날.
212.
298-247-258-270-271-281-211-257-202-210-221-272-299-201-285-284-270-222
오래된 노래
김춘수의 꽃. 나를 부르네 그리고 여기 서있네. 나의 존재론적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