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느 유년에 불었던 휘파람을 지금 창가에 와서 부는 바람으로 다시 보는 일 바람이 구름 속에서 깊게 울린다 비가 오는데, 얼굴이 흘러 있는 자들이 무언가 품에 하나씩 안고 헌책방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책을 책장의 빈 곳에 쓸쓸하게 꽂는다 그러곤 아무도 모르게 낡아가는 책을 한 권 들고 펼친다 누군가 남긴 지문들이 문장에 번져 있다 마음이 이곳에서 나귀의 눈처럼 모래 속을 스몄던 것일까 봉인해 놓은 듯 마른 꽃잎 한 장, 매개의 근거를 사라진 향기에게서 찾고 있다 떨어져 나간 페이지들이 책에 떠올라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오면 책을 펴고 조용히 불어넣었을 눅눅한 휘파람들이 늪이 돼 있다 작은 벌레들의 안구 같기도 하고 책 속에 앉았다가 녹아내린, 작은 사원들 같기도 한 문자들이 휘파람에 잠겨 있다 나무들을 흔들고 물을 건너다가 휘파람은 이 세상에 없는 길로만 흘러가고 흘러온다 대륙을..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