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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8월의 詩: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즛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를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人情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예님군의 땅과 나무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적고 가부엽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五千오천 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 더보기
10月의 詩: 통영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이러나 바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주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 더보기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五十燭(오십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않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