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章詩

1月의 詩: 당신은 첫눈입니까 누군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 했을 것이다 생각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오르는 가람을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 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 더보기
12月의 詩: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中에서 어제는 오늘의 내일. 그 어디쯤에선가 문득 걷던 길을 멈춰서서 나는 오늘의 일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시간이 쌓아놓은 나의 生活이 관계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을 곰곰히 되짚어 본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과 어제의 기억들이 오늘의 기억들에게 찬찬히 시간의 忍苦를 이야기해주는.. 더보기
11月의 詩: 레몬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10月의 詩: 통영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이러나 바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주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 더보기
9月의 詩: 구월의 이틀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까지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으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 더보기
8月의 詩: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굴참나무숲 너머 자작나무숲이 아름다운 날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그 나무 속에 있다 나는 길 위에 있고 파도는 길 밑의 길까지 밀려온다 나는 태양을 향해 걷고 태양은 내가 걷지 않는 길까지도 걷는다 그것을 음악이라 이름 부르면 삶은 더욱 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 위에는 단지 세 그루의 나무만 서 있다 나무에 황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의 영혼에도 나무 세 그루는 서 있다 이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대가 이 세상 한구석에 골목처럼 접혀 있어도 구석은 이미 보석과 같다 나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밑의 사랑 위에 있다 태양의 빛이 끝나는 길 위에는 달빛의 길 또한 흐르고 있고 수평선이 하늘로 빠지는 다섯번째 둔덕에서 부는 휘파람은 스산하다 그때 내가 읽었던 소설은 누가 바람을 .. 더보기
7月의 詩: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이성복 詩集 『남해 금산』(문학과지성, 1986) 中에서 34년이 .. 더보기
6月의 詩: 봄이 씌다 노랑꽃들과 분홍꽃들과 갈색 덤불 위에 너의 연록빛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평화롭고 우아한 여린 초록이 내 눈에 씌었다. 보도 블록에도 버스표 판매소에도 마주오는 사람의 얼룩에도 지나가는 버스에도 건너편 유리벽에도 허공에도 하늘에도 너의 그림자가 어룽댄다. 세상이 너의 어룽 너머로 보인다. 그리고 이 소리는 무엇일까? 이것은 소리일까? 이 기분 좋은, 조용히 부풀었다가 잦아들고 하는 이 것은 너의 호흡 햇빛 속에 여려졌다 짙어지는 녹색의 현들. 오늘 나는 온종일 상냥하다. 너의 그림자 속에서, 휘늘어진 너의 가지들은 햇빛 속에서 주의 깊고 온순하게 살랑거렸다. 내 마음은 그 살랑거림 속에서 살랑거린다. 너의 이파리들 속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도록 너를 껴안고 싶다. 너의 여림과 고즈넉함이 나의 몸에 베일 .. 더보기
5月의 詩: 빛이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너에게 불쑥, 하나의 세상이 튀어나왔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세상이 움푹, 꺼져버렸어 그날부터 웃기만 했어 잘 살펴보지 않으면 속을 알 수 없지 원래 어둠 속에 있는 건 잘 보이질 않지 빛을 비추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 웃기만 했어 얼마나 오래 이럴 수 있을까 정말 웃기만 했어 처음으로 검은 물을 마셨을 때 빈자리의 결핍을 보았어 결핍에게 슬쩍 전화를 걸었는데 받았어, 받았어 결핍이 맞았던 거지 나는 오 년 뒤에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질 거야 그날은 시장에서 사과를 고를 때보다도 더 아무 날이 아닐 것이고 골목을 떠도는 누런 개의 꼬리보다도 더 아무 감정도 별다른 일도 없겠지 「빛이 밝아서 빛이라면 내 표정은 빛이겠다」 이원하 詩集『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문학동네, 2020) 中에서 나와 .. 더보기
4月의 詩: 황무지 황무지(The Waste Land) ─ T.S. 엘리엇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물었을 때 그네는 대답했지요. '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1 죽은 자의 매장 (The Burial of the Dead)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湖)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 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더보기
3月의 詩: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더보기
2月의 詩: 네가 그리울 때만 환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설 때면 불현듯 네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불우한 약속처럼 돌아왔다 이처럼 어설픈 아픔도 그리움이 될 수 있던가 아픔은 흉터처럼 또렷해서 상처나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자주 돌아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봄에 피는 꽃들은 무슨 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한밤중이 지나면 소문처럼 네가 피었다 네가 그리울 때만 나는 환했다 「목련이 필 때면」 박찬호 詩集『나는 네가 그리울 때만 환했다』(문학의전당, 2019) 中에서 어긋나는 건 시간 뿐일까. 스치듯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너와 내가 어긋나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을 잘못 읽은 탓이다. 그래서 그대와 나는 여기 다른 시간에 서있다. 짙은(Zitten) | 곁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