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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사전

삶의 존엄과 실존의 사이, 영화 <Nomadland>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하루하루
종종 걸음으로 소리없이 다가가고,
지나간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티끌의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어 왔구나.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아!
인생이란 기껏해야 걸어다니는 그림자,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시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그건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 요란한 소리와 노여움에 가득 찼지만
뜻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 멕베드, 5막 5장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삶을 목적과 주관적 가치를 결정하고 '나'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야할 동기부여를  만든다. 거기에는 몇 가지 요구사항이 따르는데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결정이 도덕적이며 불법적이며 반사회적이지 않을 것, 결국 사회구조가 결정한 규칙과 질서에 부합할 것을 요구한다. 반도덕적이며 불법적이지 않다하더라도 '일반적'인 삶의 방식과 질서에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많은 의미의 사회적 질서의 수동적인 저항을 의미하며 불편함을 넘어서 개인이 주권자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피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불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1998년 한국의 IMF사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피해는 서민, 중산층, 상대적으로 경제적 위기에 취약한 계층에 몰아닥쳤다. 영화, <Nomadland>는 그 대침체의 한켠에서 일어났던 작은 비극을 조명한다. Nevada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Empire. 이 마을은 석고광산과 공장을 운영하던 United States Gypsum Corperation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가족들로 만들어진 작은 도시였다. 1923년에 지어져 한때 750명 이상의 인구를 가졌던 이 마을은 경기침체로 인한 석고 수요의 감소로 8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2011년 사업을 철수하고 회사가 문을 닫자, 200여명의 남의 회사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결국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고, 이 마을은 유령 도시가 되었으며 89405라는 이 지역의 우편번호도 말소가 되었다.

 

주인공 Fern은 남편을 따라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고 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냈으며, 남편이 죽은 후에도 추억이 남은 이 마을이 사라질 때까지 지켰다. 마을이 사라진 후 그녀의 선택은 방랑의 삶이었다.  남은 짐은 보관창고에 넣어두고 최소한의 물건(아버지가 Yard sale에서 사서 고등학교 선물로 주었던 접시, 남편의 옷, 등)을 챙겨 뱅가드(Vangard)라 이름 붙인 낡은 밴(Van)에 싣고 길을 떠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낭만의 여행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의 삶, 혹은 온 몸으로 길을 밀고 나아가는 의미의 여행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그녀에게 많은 선택지가 없었다. 친구, 여동생, 유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만난 Dave 가족의 집에서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면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집'이라는 개념을 바꾸는 일이였다. 유령마을이 된 고향에 '집'을 유지하고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서 '거주'를 포기하고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꾼 삶의 방식의 개념으로 이제 그녀에게 '차'는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하우스리스(Housless)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실존적 자아로서의 존엄의 근거가 되었고, 그래서 그녀는 차가 고장나 수리비로 2300불이 나왔을 때 카센터 직원이 차의 잔존가치로 볼 때 다른 차를 사는게 더 쌀 거라는 조언에 '이 차는 그냥 차가 아니라 내 집'이라고  고백한다. 

 

영화는 2008년 대침체로 인한 금융위기로 은퇴자금이 증발했거나 직업을 잃었거나 다른 이유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비자발적인 현대 유목민의 삶을 시작해 자신의 삶을 새로이 개척하며 사회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개인의 실존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거주자' 혹은 사회의 안정된 틀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진 사회적 배경에 대한 비판이나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하고 예측불가한 현실에서 개인이 맞닥뜨릴 수 있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 어떻게 해야 삶의 존엄과 실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지를 Vandwellers의 삶과 Fern의 여정을 통해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그들의 삶의 선택이 어떤 부분에서 사회와의 연결고리와 문제가 있는 지 두 부분에서 짚어주고 있다. 린다는 12살때부터 평생 일했던 자신이 사회보장연금으로 한 달에 550불 밖에 받을 수가 없었고, Fern이 '거주자'로서 남고자 직업을 찾기 위해 찾은 정부기관에서 결국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돌아섰을 때 추운 겨울만큼이나 혹독한 사회의 벽을 겨울 풍경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는 길을 떠나 기회가 되는 대로 일용직일을 하며 돈을 벌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살아간다. 네바다주의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크리스마스 물류량의 증가로 한시적으로 채용하는 일용직일을 하고 거기에서 만난 린다(Linda May - 그녀는 실제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영화의 원작의 실제 주인공들 중 한 명이다) 를 따라 밥 웰스(Bob Wells)가 만든 RTR(Rubber Tramp Rendezvous, 고무 방랑자들의 랑데뷰 - 고무타이어를 사용하는 밴이나 RV차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임) 연례 행사에 참여해  Vandwellers, 밴을 타고 유랑하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운다. 

 

 

그 모임의 리더인 밥 웰스가 하는 연설은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를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온 몸으로 안고 나아가는 방법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른 점은  달러의 폭정, 시장의 폭정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달러 폭정의 멍에를

            짊어지고 평생 동안 살아갑니다. 우리는 일꾼입니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목초지 밖에 버려지는 일꾼, 그것은 우리 중 많은 사람

            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회가 우리를 버리고 일꾼인 우리를 목초지 밖으로 버려지면 우리는 모여서  서로를 돌봐야했습니

            다. 내가 보는 방식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고 경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목표는 구명정을 꺼내 최대한 많

            은 사람들을 구명정에 태우는 것입니다."

 

주인공 Fern은 공원관리사로, 식당 주방보조로 일하며 시한부 삶을 살며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 알라스카로 돌아가 오래전 추억을 다시 살펴보고 싶어 여행하고 있는 샬린 스웽키(Charlene Swankie)를 만나고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던 Dave를 만나 삶의 다양한 이면들을 보게 된다. 차를 고칠 돈을 빌리러 들린 동생과,그리고 다시 만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Dave를 멀리한 채 그녀는 마지막으로 Empire, 그녀의 추억이 깃들 곳을 다시 방문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비자발적인 유목민의 삶을 시작한 첫번 째 떠남에서, 이후 길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이별을 완성하고 진실된 주체로서의 스스로 결정한 두번 째 '떠남'하기 위해서였다. Fern은 옛'집'을 둘러보고 다시 길을 떠난다, 영원한 노마드의 삶을 향해서.

 

 

여행을 하다보면 RV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본다. 거주자로서 그들은 방랑을 꿈꾼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원초적인 삶의 동경으로 혹은 색다른 삶의 변화를 위해. 배낭여행을 하고 캠핑을 하고 그리고 결국 거주자로서의 본분으로 돌아온다. 경제적, 사회적 질서와의 고리를 연결하기 위해 어쩌면 그것이 인간성의 존엄을 지키기 가장 손쉬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주자'로 남는다. 노마드의 인생은 모험이다. Fern의 동생이 고백하듯 Fern은 인생에 담대한 용기를 던져넣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길을 다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선택지에서 그녀가 한 선택은 그녀의 가치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한 주관적인 자아와 사회적인 자아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여행의 길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길에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헤이지며  그 길에서 인생을 완성할 것이다.

 

- See you down the road.


 

영화에서 두 개의 시가 등장한다. 하나는 상점에서 만난 소녀에게 가르쳐주었던 맥베스의 독백과 길에서 만난 유목민 청년에게 들려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이다. 인생과 사랑에 대한 詩. 어쩌면 우리가 늘 함께 갖고 있는 양면의 거울일 수도 있겠다.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 Macbeth, Act V Scene V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하루하루
종종 걸음으로 소리없이 다가가고,
지나간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티끌의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어 왔구나.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아!
인생이란 기껏해야 걸어다니는 그림자,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시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그건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 요란한 소리와 노여움에 가득 찼지만
뜻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 멕베드, 5막 5장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 Sonnets 18

 

 

 

그대를 여름 날에 비교해 볼까요?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더 온화하지요

여름의 거친 바람은 오월에 이쁜 봉오리를 흔들어 놓지요

또 여름은 너무 짧아요

 

때로는 태양이 너무 뜨겁게 비치고

자주 그 황금 얼굴이 구름에 가려 어두워 집니다

아름답던 만물이 그 빛을 잃는데

이것은 우연이나 자연의 섭리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신의 영원한 여름은 지지도 않거니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도 않고

죽어서 지하를 방황하지도 않을 것이

그대가 나의 영원한 시 구절에 새겨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살아서 눈으로 읽을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서 그대를 영원히 살아 있게 해 주지요

 

                                                                        - 소네트 18번

 


 

영화 <Nomadland>(2020)는 2017년 제시카 부루더(Jessica Bruder)가 쓴 동명의 논픽션 <Nomadland: Survining America in the twenty-one centry - 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3년동안 Halen이라 이름붙은 Van을 타고 대침체를 겪으며 떠도는 삶을 취재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주인공 Fern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Frances McDormand)가 판권을 사서 제작에 참여했으며 클로이 자오(Chloe Zhao)에게 감독과 각색을 의뢰해 만들어졌다.

 

 

2014년 아리조나 Sonoran Desert에서 제시카 부루더

 

영화는 린다 메이(Linda May)와 샬린 스웽키(Charlene Swankie)를 연기했던 본인들을 비롯해, RTR 모임에 모였던 실제 노마드들인 비연기자들과 함께 만들어졌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9년작 원더풀 라이프(After life)처럼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으로 만들어졌다.

 

2020년 9월 LA Drive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린다 메이, 샬린 스웽키

 

RTR의 리더인 밥 웰스(Bob Wells)는 <Cheap RV Living>의 창립자였고 RTR 모임을 조직했으며 2016년에는 "Homes on Wheels Alliance"라는 자선단체를 조직해 거주 및 여행용 차량을 확보해 Vandweller의 삶을 지원하며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고, Youtube Channel도 운영 중이다. 

 

 

영화는 2020년 9월 77회 베네치아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되어 상영되었으며 2021년 1월 개봉되었다.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영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194개의 상을 휩쓸었고 93회 아카데이 시상식에서 작품상(프랜시스 맥도맨드, 클로이 자오, 피터 스피어스, 몰리 애셔, 댄 잰비), 감독상(클로이 자오), 여우주연상(프랜시스 맥도맨드: <Fargo(1997)>,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2017)>에 이은 그녀의 3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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