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詩集『이 時代의 아벨』(문학과지성, 1983)
그녀는 20년전 6월, 그녀의 詩의 고향이었던 지리산 뱀사골로 돌아갔다. 시인이자 운동가로서 고통과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생명에의 강한 의지, 한없는 사랑과, 그런 사랑의 갈망하는 자의 슬픔과 기쁨을 노래했던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시처럼 승천했다. '철철 샘물이 흐르고/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 갑니다/구름처럼 바람처럼/승천합니다' (「지리산의 봄 1 - 뱀사골에서 쓴 편지」中 )
250인 기부 릴레이를 통해 20주년을 기념해서 며칠 전에 시전집도 발간되었고, 얼마 전에 출판기념회도 있었다(http://www.womennews.co.kr/news/49816)
사라져야할 것들과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잊혀지지 않게 해야할 것들이 뒤섞인다.
불분명한 세월의 방향이, 의도적으로, 그 안에 개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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