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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노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午後 6時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時間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都市는 곧 活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速度(속도)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冊이 되리라.
勝負(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午後 6時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日常(일상)의 恐怖(공포)
보여다오. 기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노을」
   기형도 추모文集『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 2004) 

 

 


 


노을, 천의 얼굴...무작정 노을을 찍기 위해 달려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렸다. 해가 지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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