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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7월의 詩: 침묵 바이러스 나는 말비듬이 떨어진 당신의 어깨를 털어주었다. 당신은 말들을 두 손 가득 담아 내 몸에 뿌려주었다. 눈을 맞은 나무처럼 꼿꼿이, 이 거리에 함께 서 있던 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말을 상자에 담아 당신에게 건넸을 때, 당신은 다이얼을 돌려가며 주파수를 잡으려 애를 썼 다. 라디오 앞에 귀를 내어놓은 애청자처럼, 나는 당신의 사연을 읽어주는 DJ가 됐을지도 모 를 일이다. 그때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몸져 누웠을 뿐.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진 체벌이었을 수도 있다. 죄를 입증하는 것보다 결백을 입증 하는 데에 말이 더 무력한 탓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거리에 서 있었다. 줄기만 남은 담쟁이들조차 시멘트벽을 부둥 켜 안고 말없이 열렬히 .. 더보기
11월의 詩: 걸리버 창문 모서리에 은빛 서리가 끼는 아침과 목련이 녹아 흐르는 오후 사이를 도무지 묶이지 않는 너무 먼 차이를 맨 처음 일교차라 이름 붙인 사람을 사랑한다 빈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빗방울의 마음으로 + 커피를 따는 케냐 아가씨의 검은 손과 모닝커피를 내리는 나의 검은 그림자 사이를 다녀올 수 없는 너무 먼 대륙을 건넜던 아랍 상인의 검은 슬리퍼를 사랑한다 세계지도를 맨 처음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적어놓은 채로 죽은 어떤 시인의 문장과 오래 살아 이런 꼴을 겪는다는 늙은 아버지의 푸념 사이를 달리기 선수처럼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부친 편지가 돌아와 내 손에서 다시 읽혀지는 마음으로 + 출구 없는 삶에 문을 그려넣는 마음이었을 도처의 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