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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에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의 눈 「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먼 곳에서 눈 소식을 듣는다. 오래지 않은 저 사진의 기억에도 눈이 있었다. 사월의 어느 날, 봄밤 한없이 내리던 눈, 그 안에 따뜻하게 내려앉던 달빛과 검은 밤의 공기. 더보기
거미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김수영 詩集『巨大한 뿌리』(민음사, 1974) 이렇게 스산한 구절이 있을까.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이라니. 설움에 몸을 태울 만큼 나는 더 이상의 기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있는 중이고, 좌절과 분노에서 오는 그런설움에 나는 새카맣게 타버리고 있는 것이구요, 나를 설웁게 하는 이 세계가 나를 염세하게 만드는 중이구요, 바람결에 날리는 거미줄, 매달린 까만 거미처럼 그렇게 하늘하늘 세상에 매달려 있구나 싶은 거랍니다. 거미하면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 더보기
봄, 몸 거기에도 햇볕의 힘 가닿는구나 어지럼증 한바퀴 내 몸을 돌아나간다 기억이 맑은 에너지일 수 있을까 식은 숭늉같은 봄날이 간다 이 질병의 언저리에 궁핍한 한세월, 봄빛의 맨 아래에 깔린다 죽음이 이렇게 부드러워지다니 이 기억도 곧 벅차질 터인데 햇빛은 지금 어느 무덤에 술을 불어넣으며 할미꽃 대궁 밀어올리는가 그 무덤들 보이지 않지만 문 밖까지 굴러와 있는 것 같아서 살아 있음은, 이렇게 죽음에게 허약하구나 아픔으로 둥글어지는 젖은 몸, 그리고 조금씩 남은 봄, 자글자글 햇빛이 탄다 「봄, 몸」 이문재 詩集『산책시편』(민음사, 1993) 봄날, 따뜻하고 환한 햇살의 여운이 길게 밤까지 이어집니다. 포근한 봄밤...이 봄도 또 한 세월로 가고 바람따라 흘러가는 것들에 줄을 서겠죠. 생명에서 죽음으로, 햇볕들.. 더보기
두렁과 이랑 두렁과 이랑, 무엇이 나올까... 더보기
어쩌다 여기 서 있는 걸까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보다 어쩌다 여기에 서 있는걸까 하는 질문이 곧잘 들곤 한다. 미래에게로의 투사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더 중요한 게다. 삶이 흘러간다라고 할 수 있다면, 그 흐름을 지금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것인가 보다. 손가락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시간, 그 시간 사이 어디 쯤엔가 우두커니 서서. 더보기
달과 소나무 달. 불온한 것. 비가. 붉은 달. 내 처음처럼 미숙한 부끄러움. 차가운 금속, 하지만 그 어떤 비단보다 고요한 부드러움. 노랗게 빛나는 부엉이. 밤의 둥지. 저기 멀리 앞질러 앞질러 가는 논두렁 너머 그림자. 어떤 마음보다 가라앉을 수 있는 심연. 드러내놓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가벼움. 바람 이 너를 안아줄 때까지. 기다리는 꿈보다 더 가벼운 달. 소나무. 침엽수. 날카로운 아침을 불러오다. 언젠가 보았던 날들의 기억은 그런 날카로운 얼음의 날들, 너 를 향한 애증으로 세워진 기억으로 시작되었다. 얼어붙은 새들이 떨어지고 나를 바라보던, 너의 붉은 눈을 기억한다. 침엽수림들은 햇살을 향한 길항으로 시작되었다. 와와 함성을 쏟아내며 거 침없이 솟아오르던 거침없는 生의 함성들. 날카로움의 힘은 그런 방향.. 더보기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바가 되는 지 .. 더보기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 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姿 勢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中에서 **************************************.. 더보기
금관을 꿈꾸는 목관 Saxophone...목관악기. 하지만 외관때문에 흔히 금관으로 오해를 받는다. 어디쯤 금으로 칠갑을 두르고 오해하며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왼손에 오른손을 포개며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멀리서 들려온 부고를 듣는다...... 죽음은 언제나 막연한 거리로 인해 음울하며 안타까움은 그 젊음 깊이에 비례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모른다, 언젠가 만나서 웃음웃으며 술잔을 부딪혔을런지도 모르고 어깨를 툭 치며 요즘 어때? 라고 흔한 인사를 건넸을런지도 모른다 그저 기억의 저편 너머 깊고 어두운 시간의 굴레에 머물러 있다가 유리처럼 빛나는 얼굴로 저 어둑어둑한 금빛 그림자로 내 앞에 어른거릴런지도 모른다 Charlie Parker, Summertime... 더보기
쓸쓸한 날에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을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알리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더러운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을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더보기
달팽이의 집 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도 않았다 보호색을 띠고 안주해버림이 무서웠다 힘겨운 짐 하나 꾸리고 기우뚱 기우뚱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살고 싶었다 속살을 물 위에 싣고 춤추고 싶었다 꿈이 소박하면 현실은 속박쯤 되겠지 결국은 힘겨운 짐 하나 벗으러 가는 길 희망은 날개로 흩어진 미세한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최초의 본능으로 미련을 버리자 또한 운명의 실패를 감아가며 덤프 트럭의 괴력을 흉내라도 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쉬운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어도 늘 제자리는 안될걸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입으로 깨물면 부서지고 마는 연체의 껍질을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니 「달팽이의 꿈」 이윤학 詩集『먼지의 집』(문학과지성, 1993) -본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시는 계속 쓸 것이고 밥.. 더보기
St. Jacobs Canada Ontario주에 있는 St. Jacobs에 들렸다. 근처에 갔다가 잠깐 들린 길이라 많이 둘러보지는 못했다. Mennonites들이 사는 마을인데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고, 고즈넉했다. Mennonites는 16세기 급진적 종교개혁애 따른 개신교 종파인 재세례파(재침례파)를 근원에 두고 있다. 재침례파 중에서 새로운 예루살렘 건설에 대한 종파적 갈등 속에서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이 Mennonites의 기원이다. 유아세례에 대한 부정으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되어 많은 박해를 받았다. 유럽의 종교 박해를 비해 미대륙으로 이주한 이들은 미국의 Pennsylvania주에 25만명 이상이 모여 촌락을 형성했고, 1800년대 초기에는 값싸고 넓은 경작지를 찾아 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