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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꽃이 핀다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하루가 볕바른 마루 같다

맨살의 하늘이
해종일
꽃 속으로 들어간다
꽃의 잎시울이 젖는다

하늘이
향기 나는 알을
꽃 속에 슬어놓는다

그리운 이 만나는 일 저처럼이면 좋다

 

「꽃이 핀다」 
문태준 詩集『 가재미』(문학과지성, 2006) 中에서


203.

세상에 꽂아놓은 꽃잎들을 하나하나 다시 따모으며 꽃다발을 만들 듯, 실타래를 길게 드리우며 멀어져가는 뒷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듯 글을 읽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영혼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홀현히 사라지는 사람들의 자취를 되짚으며 어두워져 가는 뒷골목의 그늘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지요. 어디에선가 그대의 겹쳐진 그림자가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때론 알 수 없는 거리의 안도감과 혹은 그 거리의 불안함이 영혼을 어지럽히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글을 읽습니다. 단단히 옹이진 문장 사이에서 아름다운 빈틈을 찾아내 속삭입니다. 그 빈틈에서 꽃이 피어오르고 향기가 공중에 나돕니다. 나는 그대를 읽습니다. 그것은 바람 속에 흰 벽을 세우는 일처럼 슬픈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그 자리에서 꽃이 되고 숲이 되고 그러다 언젠가는 바람에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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