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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종이얼굴

 

 

가는 곳마다
햇빛이 무너졌다 얼마나 더
입술 깨무는 날들이 찾아올 것인가

그리고 종이가면이 펄럭거린다 누군가
지나가고 나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저녁의 나뭇잎, 저녁의 검은 새
왜 그럴까?

피가 부르는
피가 부르짖는 소리를 따라가보면
산사태지면서 타오르는 수천의 꽃, 꽃잎파리들
고요하여라, 저녁 햇빛속 거닐며 너의 무덤
너의 뿌리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평선 서녘부터 동녘에 이르기까지 한떼의 소나기가 
빛의 속도로 말달려간다
새로운 태양아래 강과 대지가 솟아오르려면 
아직 천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한 생애가 뜻없이 불타오르는 동안
내 넋의 대장간에서 달궈지는 이 피묻은 사랑
씨줄 날줄로 얽어져 있는 세월의 무게
고스란히 끌어안으면

갑자기, 사과나무처럼 네가 보고 싶어진다.



「종이얼굴」 
  하재봉 詩集『안개와 불』(민음사, 1988) 中에서


 

삶의 환희는 그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는 驚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異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진실로 끝맺음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고 하늘이 있고 바람이 있다. 내가 안은 이 커다란 세계를 모두 이해해줄 그런 공간의 의미들과 함께.

 

 


Lou Reed | Perfec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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