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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돌아가는 먼 길, 不醉不歸

 

 

어느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不醉 」 
 허수경 詩集 『혼자가는 먼 집』(문학과지성, 1992) 中에서

 

 


 

오래전 길들인 꽃들을 바람에 날리며 먼 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한 날

혼자가는 먼 길의 깊이가 아득하다

살고 죽는 일 모두 세상을 알아가는 일일 뿐인데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드리워진 그대의 그림자가 슬프다

그대는 그 자리에서 그림자와 함께 기다리는 자리에 남을 것이고

나는 그림자 없는 길 위에 서있을 것이다

취하는 건 서러운 것이고 우는 건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나 울음 울고 내 마음 속 그대, 거기에...

 


 

Stevie Wonder | Lat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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