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不醉不歸 」
허수경 詩集 『혼자가는 먼 집』(문학과지성, 1992) 中에서
오래전 길들인 꽃들을 바람에 날리며 먼 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한 날
혼자가는 먼 길의 깊이가 아득하다
살고 죽는 일 모두 세상을 알아가는 일일 뿐인데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드리워진 그대의 그림자가 슬프다
그대는 그 자리에서 그림자와 함께 기다리는 자리에 남을 것이고
나는 그림자 없는 길 위에 서있을 것이다
취하는 건 서러운 것이고 우는 건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나 울음 울고 내 마음 속 그대, 거기에...
'시인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이 그대를 기다리는 오후 (4) | 2020.02.22 |
---|---|
2月의 詩: 네가 그리울 때만 환했다 (11) | 2020.02.01 |
생일주간 (6) | 2019.11.17 |
종이얼굴 (18) | 2019.11.09 |
아름다운 사냥 (4) | 2019.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