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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녹, 기다림

 

 

기다림이 무작정 나를 녹슬게 하지는 않는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그래서 나를  지층의 단계로 끌어내리는 그런 기다림이 나를 낡게 한다. 결국엔 이렇게 자리에 박혀 거둘 수 없는 날들을 세며 바람이 데려가리를 기다리는 풍화의 시간. 뜨거운 마음 안, 흩어져 있던 마음들을 모아 눈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슬픔이 그 기다림에 깃들게 하리라.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 소리가 요즘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着語,「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황지우 詩集『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 1991)


 

 

기다림이 무작정 나를 녹슬게 하지는 않는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그래서 나를 지층의 단계로 끌어내리는 그런 기다림이 나를 낡게 한다. 결국엔 이렇게 자리에 박혀 거둘 수 없는 날들을 세며 바람이 데려가리를 기다리는 풍화의 시간. 뜨거운 마음 안, 흩어져 있던 마음들을 모아 눈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슬픔이 그 기다림에 깃들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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