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는 현존합니다 질량이 불변하듯이
가장자리에서부터 혹은 위에서부터 피어나듯이
꽃 한송이의 섭리는 불변합니다
들여다보면 항상 비어있는 지상
타인의 눈물과 핏물을 받아 마시며 제가
끌려 다니는 동안도 행성은 타원의 궤도를 돌고······
이 한 몸과 마음이 때때로 추레하여
가슴에 별 하나 품고 살아가게 하듯이
슬픔의 벼랑 끝에서 곱게 핀 당신을 찾아내듯이
꽃, 한 송이 천체여
이승의 기나긴 밤에도 당신과 맺어져 있어 저는
살아 있는 것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꽃차례」
이승하 詩集『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세계사,1991)
행성과 행성의 거리는 빛이 도달하는 속도로 가늠할 만큼 넓다. 그 한없는 간극 사이를 소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거리로 줄여 오래된 추억과 빛바랜 노트에 적혀있는 낙서와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을 넣어둔다. 그 거리는 섬과 섬 사이 거리 만큼쯤 되리라 짐작을 하고,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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