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되지 않았다 도피처가 되지도 않았다
보호색을 띠고 안주해버림이 무서웠다
힘겨운 짐 하나 꾸리고
기우뚱 기우뚱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얼굴을 내밀고 살고 싶었다 속살을
물 위에 싣고 춤추고 싶었다
꿈이 소박하면 현실은 속박쯤 되겠지
결국은 힘겨운 짐 하나 벗으러 가는 길
희망은 날개로 흩어진 미세한 먹이에 불과한 것이다
최초의 본능으로 미련을 버리자
또한 운명의 실패를 감아가며
덤프 트럭의 괴력을 흉내라도 내자
아니다 아니다 그렇게 쉬운 것은
물 속에 잠겨 있어도 늘 제자리는 안될걸
쉽게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까?
입으로 깨물면 부서지고 마는
연체의 껍질을 쓰고도
살아갈 수 있다니
「달팽이의 꿈」
이윤학 詩集『먼지의 집』(문학과지성, 1993)
-본인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시는 계속 쓸 것이고 밥만 잘 먹으면 되요." 정신분열증, 기초생활수급자. 자극적인 단어들이 제목에 올라옵니다. '밥 굶는 시인'은 어떨까요. 최승자 시인의 기사를 찾아 읽어 보며 저윽이 놀랍니다. 현실이라 짐작을 하고 있지만 막상 처철한 현실을 맞닥뜨리니 두려움마저 듭니다. 낙관보다는 허무와 절망을, 시를 쓰는 일이 시시할 정도로 천착한 사유의 세계가 영생과 무한의 저쪽,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거대한 위안을 찾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읽지 못한 시들이 너무 많습니다. 시인들이 시들이 무척이나 열심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세상을 읽어내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한 켠으로 시인이 밥을 굶는 세상, 글을 쓰는 것은 정말 고귀한 정신적 사유로서의 취미이자 헌신이라는 생각마저 들게합니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이제는 시를 의식적으로 씁니다. 그럴 나이가 됐어요. 나도 살아가야 하니까요..." 나는 어떤 세상을 살아왔던 것일까. 깊은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
최승자 시인 인터뷰 기사 원문: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1/22/20101122001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