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인과나무

쓸쓸한 날에

 

 

 

가끔씩 그대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식량을 축내고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뻔뻔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꾸미고 어쩌다 술에 취하면
당당하게 허풍떠는 그 허풍만큼
시시껄렁한 내 나날을 가끔씩
그래, 아주 가끔씩은 그대에게 알리고 싶다
여전히 의심이 많아서 안녕하고
잠들어야 겨우 솔직해지는 더러운 치사함 바보같이
넝마같이 구질구질한 내 기다림
그대에게 알려 그대의 행복을 치장하고 싶다
철새만 약속을 지키는 어수선한 세월 조금도
슬프지 않게 살면서 한치의 미안함 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헛된 다짐을 늘어놓지만
힘주어 쓴 글씨가 연필심을 부러뜨리듯 아직도
아편쟁이처럼 그대 기억을 모으다 나는 불쑥
헛발을 디디고 부질없이
바람에 기대어 귀를 연다, 어쩌면 그대
보이지 않는 어디 먼데서 가끔씩 내게
안부를

打電하는 것 같기에

 


「쓸쓸한 날에」

  강윤후 詩集『다시 쓸쓸한 날에』(문학과지성, 1995)





언젠가 저 길 너머 햇살보다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주던
무장무장 밀려오는 먹구름보다 더 어두운 그늘로 내 가난한 잠을 덮어주던...
그런 소통의 길에서...
 

'시인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거장에서의 충고  (4) 2011.01.25
즐거운 편지  (6) 2011.01.21
달팽이의 집  (2) 2010.12.30
푸른 하늘을  (2) 2010.12.22
횡단  (6) 201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