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도 햇볕의 힘 가닿는구나
어지럼증 한바퀴 내 몸을 돌아나간다
기억이 맑은 에너지일 수 있을까
식은 숭늉같은 봄날이 간다
이 질병의 언저리에 궁핍한
한세월, 봄빛의 맨 아래에 깔린다
죽음이 이렇게 부드러워지다니
이 기억도 곧 벅차질 터인데
햇빛은 지금 어느 무덤에 술을
불어넣으며 할미꽃 대궁 밀어올리는가
그 무덤들 보이지 않지만
문 밖까지 굴러와 있는 것 같아서
살아 있음은, 이렇게 죽음에게
허약하구나
아픔으로 둥글어지는
젖은 몸, 그리고
조금씩 남은 봄, 자글자글
햇빛이 탄다
「봄, 몸」
이문재 詩集『산책시편』(민음사, 1993)
봄날, 따뜻하고 환한 햇살의 여운이 길게 밤까지 이어집니다.
포근한 봄밤...이 봄도 또 한 세월로 가고 바람따라 흘러가는 것들에 줄을 서겠죠.
생명에서 죽음으로, 햇볕들은 부지런히 그 바람을 따라 흘러다니며
생의 원기와 죽음의 위로를 합니다. 그 둘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주지시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