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자사전

斷想錄

 

<Variantes> by Mira Schendel, 1977, 부분 @MFAH (Der Brunnen: The Fountain)

 

 

샘, 새암,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은 이미지를 가로질러 간다. 움직이지 않는 기묘한 푸른 꽃들로 가득찬 화단, 춤추지 않고 흐르지 않고 날아앉은 새들이 모여있는 언덕, 물은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때론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그리고 또 깊게 흘러간다. 그것은 곧 실존의 꿈이다. 그 꿈은 물이 반영으로 되비친 모든 것들은 환영으로 가득찬 이미지가 되어 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율동하고 흘러내린다 - 물의 운명을 아는가 - 햇살을 걷어내고 어둠과 그림자를 안고 물은 어두운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것은 물이 안고 가라앉는 실체의 소모, 죽음으로 승화된 실존의 무게를 의미하며 어둡고 무겁고 깊은 존재의 심연을 가리킨다. 그렇게 물은 고요하고 끝모를 어둠, 꿈꾸는 무덤이 되어 거대한 잠 속에서 또 다른 시간을 가늠한다. 그리하여 길고 오랜 잠, 궁극의 심연으로부터 물은 다시 실존의 궁극적인 모성으로서 生의 의미를 가늠케 한다. 물은 부드럽고 포근한 포옹, 실체적 욕망을 이해하게 하며 새로운 시작으로 맞닿게 되고, 덧없는 삶과 순환에 대한 비관을 넘어 만져볼 수 있고 움직이고 춤출 수 있는 삶의 희열을 맛보게 한다* 그것은 물질적 상상력이며 물질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세워진 生에의 의지다. 이 낙관적이고 아름다운 生의 의지는 물 속에서 타오르는 마음이며 그 빛나는 시작을 통해 또 다른 순환의 심연을 꿈꾸게 한다. 

 

 

生의 기쁨에 대한 실존적 비유는 <장자(莊子)>의 글귀로 읽어볼 수 있다.

"샘의 물이 다 마르면 고기들은 땅 위에 함께 남게 된다. 그들은 서로 습기를 공급하기 위해 침을 뱉어주고 거품을 내어 서로를 적셔준다. 하지만 이것은 강이나 호수에 있을 때 서로를 잊어버리는 것만 못하다 (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 대종사(大宗師)  

 

 

'그림자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의 회전목마  (4) 2021.04.18
色과 形態  (28) 2021.02.13
斷想 - 그림과 음악과 詩와 영화 이야기  (6) 2020.09.07
文章들  (6) 2020.08.22
500일의 썸머  (21) 202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