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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길목

그곳에 다녀왔다 - 타이난의 밤

 

대만의 경주, 타이난(Tainan)을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의 대만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에 명나라가 건국되고 대만은 원주민들의 부족국가들의 여러 소왕국이 존재했었다. 대항해시대 이후 1624년 네델란드가 타이난에 거점을 확보하고 곧이어 타이난, 가오슝, 핑둥, 타이둥 등 동남부 일대를 세력권에 넣고 지배를 했었다. 스페인 역시 1626년 지룽, 단수이 등에 역시 거점을 확보하고 북부지역을 지배했다. 그리고는 으례 그렇듯 네델란드와 충돌을 해 대만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전쟁을 했고 1642년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이 대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 중국본토에서는 1616년 청나라가 세워지고 명의 쇠퇴하는 가운데 명의 관리이자 해적이며 거상이었던 정성공(鄭成功)이 아버지, 정지룡과 함께 반청복명을 기치로한 명나라 부흥군이 되어 주율건(朱律鍵)을 남명의 2대 황제인 융무제(隆武帝)로 옹립하여 청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결국 청에 패배하고 대륙 본토에서의 입지가 좁아지자 새로운 거점 확보를 위해 네델란드가 지배하고 있던 대만의 동남부를 공격, 1662년 네델란드를 몰아내고 대만에 자리잡게 된다. 그것이 정씨왕국(1661-1681)으로 불리는 대만역사 최초의 첫 번째 독립국이다. 세력은 동남부에 국한되어 그리 크지 않았지만 외세를 몰아낸 한족의 최초 국가라는 의미에서 현재 대만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성공은 그런 대만 역사에서 최초의 독립국가를 세운 '구국의 영웅'이자 최초의 대만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그로 인해 대륙의 한족과 관계가 시작된 점을 들어 독립적 시각에서 그의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영국의 작가 Jonathan Clements가 2004년에 쓴 정성공의 전기 <해적왕 국성야(國姓爺)와 명 왕조의 몰락 (The Pirate King: Coxinga and the Fall of the Ming Dynasty)> (국성야(國姓爺)란 동아시아의 왕조시절 왕가의 성을 가리키던 '국성'을 하사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성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스러웠던 시기에 그 성을 하사받은 사람들 지칭하기 위해 대신 부르던 말이다 (고려시대 때 왕건이 김순식에게 왕씨 성을 하사해 왕순식이 된것이 그 예다). 정성공은 남명의 융명제에게 국성인 '朱'씨를 하사받았기에 또 다른 국성야로 불리는 것이다)에서 '중국의 아들, 대만의 아버지'로 부를 만큼 그의 의미는 대만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타이난은 정씨왕국의 수도이자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청나라 시대에까지 대만의 제 1도시로 번성하였다. 대만일치시기 이후 타이베이가 일본에 의해 새로운 수도로 정해져 제2의 도시(현재는 가오슝)가 되었고 그 후 쇠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대만의 6개 직할시 중의 하나이며 고도(古都 - 간단히 대만의 경주)로서의 위용을 가지고 있다. 

타이베이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들린 타이난. 일 때문에 들린 짧은 밤여행이라 공자묘, 샤오베이 야시장, 국립대만역사박물관, 산화 칭안궁, 쓰차오 녹색터널, 치메이 박물관, 안핑요새, 하이안로 예술거리, Blueprint Cultural & Creative Park은 다음을 기약하며 모두 건너뛰고 :) 측칸러우(赤嵌樓), 만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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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일이 있어 잠깐 들린 신추(新竹, Hsinchu) 고속전철역과 타이난 역

타이베이에서 일을 보러 신추(新竹, Hsinchu)에 들렀다 타이난으로 가기 위해 고속전철역으로 향했다. 고속전철은 한국과 비슷했다. 깨끗하고 아늑한 편. 차장 밖의 풍경도. 다만 남쪽 나라 그것의 약간의 색다른 풍경 -예를 들어 야자나무 같은- 을 제외하곤 한적한 시골의 풍경 느낌이었다. 특실을 탔는데 무료 티와 스낵 같은 걸 나눠주는 게 특이했다. 마카오 가던 배에서도 그랬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뭔가 순박하고 덜 야박한 문화적 상대성으로 느껴질 만큼. 한시간 반 남짓 달려 타이난 역에 도착.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엄청나게 모여있는 노란 택시 중 하나를 타고 타이 랜디스 호텔(Tayih Landis)에 도착, 짐을 풀고 걸어서 측칸러우(赤嵌樓)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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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都의 인상은 한국의 지방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길을 가던 도중 군데군데 사당과 절집들이 있는 건 여전했고 밤거리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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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혹시 문을 닫지 않았나 했는데 밤 9시 반시까지 오픈 ;) 사람들도 드문드문 아직 구경을 하고 있었다.

측칸러우(적감루, Chihkan Tower)는 1653년 네델란드인들이 타이난에 거점을 확보할 때 지어진 요새로 Fort Provintia(프로방스 요새)로 불렸다. 1662년 정성공이 네델란드를 몰아내고 이 곳을 사령부로 사용을 하였다. 외세혁파 등을 이유로 네델란드식 건물들은 모두 파괴하고 중국식 건축양식으로 재건되었다. 그후에도 지진과 전쟁 등으로 여러 차례 보수가 되었고 1879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성공이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형상화해놓은 동상과 측칸러우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될 때 옮겨진 9개의 비석, 유교 및 도교사원(해신묘, 문창각)과 유물들이 있다.

밤의 측칸러우는 조용하고 고요했다. 건물 자체로서의 조형미는 찾기 힘들었지만, 정원은 아름다웠다. 3월 초인데도 걸어오는 동안 땀에 젖었던 몸이 밤바람에 조금은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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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ji Jump, Korean BBQ, Tainan

가는 길에 보았던 번지점프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체인점으로 타이베이에도 있다던데 본적이 없다. 사람들이 많았고 깨끗했다. 코스메뉴와 참이슬 보통과 포도맛을 먹었다.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주는데 같이 간 일행이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냥 가버렸다(!) 그래서 내가 구웠다... 음식은 맛있었고 구색으로 시킨 김치찌게는 으례 그렇듯 무슨 맛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캐나다/독일 청년은 정말 맛있게 먹더군. 한마디 해줬더니 건배하자고 해서 건배도 하고...즐거운 밤이었다.

다음 날은 일을 보고 다시 고속전철을 타고 타이베이로 돌아갔다. 이렇게 스쳐지나간 곳은 떠날 때마다 항상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비감이 스친다. 그렇게 타이난의 짧은 추억은 어제의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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