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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9月의 詩: 구월의 이틀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까지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으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고 높은 탑 위로 올라가 나는 멀리

돌들을 나르는 강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 더 먼 곳에도

강이 있어 더욱 많은 돌들을 나르고 그 돌들이

밀려가 내 눈이 가닿지 않는 그 어디에서

한 도시를 이루고 한 나라를 이룬다 해도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나의 구월이 있다

구월의 그 이틀이 지난 다음

그 나라에서 날아온 이상한 새들이 내

가슴에 둥지를 튼다고 해도 그 구월의 이틀 다음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빙하시대와

짐승들이 춤추며 밀려온다 해도 나는 

소나무숲이 감춘 그 오솔길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을 본다

 

 

  안재찬 「구월의 이틀」 
  시운동 詩集『시운동시선집』(푸른숲, 1989) 中에서

 


안재찬은 류시화가 되고 이 詩는 그의 새 이름으로 첫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 다시 실렸다. 그의 단절이 그의 생경했던 이름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은 문단과의 불화나 갈등이라는 여러 소문들을 넘어 그의 시세계의 변화에 대한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80년대 초반 하재봉, 박덕규와 <시운동>을 결성, 새로운 형태의 문학운동을 주도했던 그의 시세계의 변화에 대한 불편한 단절이었다. 

 

시운동의 정신의 근간이었던 상상과 리듬,  자유에 대한 탐구, 그로 인한 문학의 가치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고자 했던 그의 시들이 일면 동일한 내면성에 대한 침착으로 보이지만 더 단순화되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불친절한 화해는 82년 이후 시운동 활동을 중단하고 91년 첫시집을 발표할 동안 명상활동을 통해  변화했을 그의 세계관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민주화운동의 막바지에 요구되었던 시대정신과의 단절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그의 詩들은 한쪽으로는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문학이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위해 문학적 가치를 버렸다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다른 쪽에서는 그의 개인주의적이고 내면에 천착하는 詩의 경향이 당시의 시대상황과 맞지 않았고 비유와 은유의 당시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도 동떨어져 비평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90년대 초 시의 대중화와 저급화에 일조를 했던 '감성시'라 불렸던 일련의 시집들의 범람으로 인해, 그런 詩들과의 분별력을 거론해야할 상황으로까지 가 닿게 된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 감정의 찌꺼기들을 풀어놓은 '감성시'와 그의 詩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오욕이긴 하지만 결국 문단과의 단절은 그의 작품들이 문단과 거리가 멀어져 버린 이유가 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시인이 필명을 바꿀만큼 그의 새로운 세계를 펼쳐내고자 했다면 그의 첫 시집에 예전 시운동 시절, 안재찬의 시를 싣지 않았어야 한다고 본다. 변절이든 변화든 본인의 단절을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13년 그의 시작에 대한 정리라고 보았던 것이고 시운동부터 그를 보아왔던 독자들과 평단은 그의 변화를 앞서 얘기한 '상황적'인 결과로 인해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 내놓은 두 권의 시집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는 점에서 결국 그를-아마도 그의 의도대로-안채찬이 아닌 류시화 시인으로 남게 했다. 

그와 함께 시운동 활동을 했던 이문제 시인의 말처럼 일상적이고 평이한 말들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그의 언어가 어떻게 옳곳게 평가될 것인가는 그의 문학적 성취와 완성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내 기억의 안재찬의 詩는 아름다웠고 여전히 푸르다.

 


 

 

노을빛

    가을

    하늘

새들의 

따뜻한 

    수다

 

공부하고 일하고 영화보고 음악을 듣고 숨을 쉬고, 가끔 외출하고, 기억하고 그리고 生을 꿈꾸고.

집콕 26주째.


 

Rocoberry | Goodbye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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