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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8月의 詩: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굴참나무숲 너머 자작나무숲이 아름다운 날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그 나무 속에 있다
나는 길 위에 있고 파도는 길 밑의 길까지 밀려온다
나는 태양을 향해 걷고
태양은 내가 걷지 않는 길까지도 걷는다
그것을 음악이라 이름 부르면 삶은 더욱 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 위에는 단지 세 그루의 나무만 서 있다
나무에 황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의 영혼에도
나무 세 그루는 서 있다
이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대가 이 세상 한구석에 골목처럼 접혀 있어도
구석은 이미 보석과 같다
나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밑의 사랑 위에 있다
태양의 빛이 끝나는 길 위에는 달빛의 길 또한 흐르고 있고
수평선이 하늘로 빠지는 다섯번째 둔덕에서 부는 휘파람은 스산하다
그때 내가 읽었던 소설은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이다
그 소설은 내가 숲으로 가는 열한번째 길 바깥에서이다
사람이 가장 나중에 사랑해야 할 것이 여자라고 씌어 있던 소설은 적요하다
길 위에서는 돌을 사랑하고 돌을 흘러가는 강물의 흐름을 읽고
일곱번째 바람이 부는 저녁 그 돌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그 돌의 여자가 되어야 한다
그 강물의 창문은 하늘을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그대를 위한 것이었다
바람이 알맞게 불고 봄 저녁이었고
포구에는 배가 불빛에 지치고 있었다
자작나무숲 너머 사람이 아름다운 저녁이 있고
그 숲을 지나 지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있는 자전거가 아름다운 날이다
나는 바다로 가는 길 위에 있고
그대는 내가 가는 길 끝에 있다
나는 그 길을 가장 낮은 천국으로 가는 첫번째 길이라고 이름 불렀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박용하 詩集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문학과지성, 1997) 中에서

 


길 위에 그대를 놓아두고 나는 이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걷는다. 그것은 그대를 멀리 돌아가는 길이겠지만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서 있을 그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함일 것이리라. 그 길 위에 음악이 있고 별이 있고 달빛이 흐르기도 하고, 때론 바람이 일고 폭풍이 일고 스산한 쓸쓸함이 함께 할 것이다. 담담하고 고요한, 그 적요(寂寥)의 저녁. 어둑어둑한 길 끝, 빛나는 불빛 하나.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름이 길에는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길을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부른다. 어쩌면 그대를 길 위에 놓아둔 것이 아니라 내가 길 위에 놓여진 것일 지도 모르기에 길이 바다에 이르고 산에 이르고 하늘로 가고 별로 가더라도 결국 내가 만날 빛나는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손

    잡고

바라본

    너울

    너울

밤바다

 

 

공부하고 일하고 영화보고 음악을 듣고 숨을 쉬고, 가끔 외출하고.

집콕 22주째.


 

Somewhere Only We Know | Keane (Paper Girl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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