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갈대 북서풍과 청둥오리의 2월
스스로 독을 품게 하던 겨울의, 가난과 갈증의 새벽으로 가는
밤마다 몸서리치며 떨던 바다를 한 광주리씩 머리에 이고
고개 숙인 낙타처럼 또박또박 걷게 하는 하나뿐인 길
떠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빵과 홀로 남은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같은
그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깨진 소주병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륜의 끊임없는 바퀴와 익숙한 체중을 못 잊어하는 옥수수밭에서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들의 뜨듯한 가랭이 같은 아직도 귀대면
중무장한 병사의 씩씩한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오래도록 남아서
태업한 꿈 속까지 이어지는 나는 수척한 햇빛에 이리저리 반사되며
얻어터지며 철길 위에 팔 벌려 수평을 잡으며 위태롭게 걷는다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70년대 배호 김종삼 그리고 너는
「수인선 철도」
이창기 詩集『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문학과지성, 1989)
한 문장의 힘은 여운이 되고 때론 잔잔한 波紋이 된다. 가만히 가만히 움직이지 않던 기억이 조금씩 흔들리고 기억 속에서 천천히 불러낸 얼굴이 이젠 점점 희미해져간다. 90년대식 수사(修辭)를 지나며 너를 닮아가고 있던 세월은 이제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간다. 욕망하면 가질 수 있는 욕망, 채워넣어도 금새 희미해지는 12월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떠내려 가고 남은 모래 속 작은 마지막 기억 그리고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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