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너머 막 옷 갈아입는 중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 너머 무한의 헛것이 보인다
내가 사진 찍어준 친구들 지나가다 보면 아직도 그 자리에 김치이, 하고 굳어 있다 내 얼굴에는 굵은 소금에 좌악, 긁힌 상처가 있다 십 년 만에 땀을 닦은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나랑 헤어진 여자는 아직도 그 카페에서 떨리는 손으로 식은 커피잔을 쥐고 있다 나는 쏟은 물 위에 유서를 썼고 서명까지 남겼다 죽어버려라, 라는 말이 증발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가벼움에 취했다 나는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둘 중에 하나를 십 초 이내에 선택할 줄도 안다 나의 표정은 도시 게릴라의 마지막 항전 기록과도 같다 그리고 내가 목숨 건 최후의 세계는 내가 서 있는 여기서 사방으로 백 보 안이다 다 나가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즐거운 생일」
심보선 詩集『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 2008) 中에서
他人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는 관계적 정의로서의 상대적 교감에 대한 감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삶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내게 따뜻한 영향으로, 한뼘이라도 나의 삶에 좋은 의미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감사. 한 방울 떨어진 잉크가 물든 손수건, 빨아도 지지 않는 그 흔적을, 추억으로 남겨두는 그런 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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