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날
자정의 푸른 숲에서
나는 당신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창가에 늘 푸른 미루나무 두 그루
가을 맞을 채비로 경련하는 아침에도
슬픈 예감처럼 당신의 혼은 나를 따라와
푸른색 하늘에 아득히 걸렸습니다.
나는 그것이 목마르게 느껴졌습니다.
탁 터트리면 금세 불꽃이 포효할 두 마음 조심스레 돌아세우고
끝내는 사랑하지 못할 우리들의 우둔한 길을 걸으며,
<형이상학>이라는 고상한 짐이 무거워
詩人인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내 핏줄에 실어 버릴 수만 있다면,
당신의 그 참담한 정돈을 흔들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다시 한번
이 세계 안의 뿌리를 일으켜 세울 수만 있다면,
하늘로 걸리는 당신의 덜미를 끌어내려
구만리 폭포로 부서져 흐르고 싶었습니다.
「가을 편지」
고정희 詩集『이 時代의 아벨』(문학과지성,1983)
259.
여름에 오래전 가을의 일기를 펼쳐 든다
부드러운 일 너머
접었다가 다시 펴도 사람의 일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어
꽃같고 비같고 바람같은 그대를 멀리 놓아둔다
무지개가 뜨는 때, 단 한 번 지상과 하늘이 연결되는
生의 기억에 대한 단편...오래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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