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여우 사이」
류시화 詩集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 1996)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사이'만큼의 공간이 있고 섬과 섬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공간과 거리만큼의 물리적 위치에 비례해 환산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과 거리가 시간으로 환산되는 만큼, 두 물체간의 시간은 또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 관계는 두 상관물의 독립적 존재로서 상대적이다. 그런 상대적 위치 속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한히 변해야하는 관계적 입장에 놓여지게 된다. 여기 서있는 나는 저기 서있는 너를 사랑하고 그런 우리에겐 사이가 있다. 그 사이는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기도 하며 무한히 자전하고 공전을 한다. 그것이 사이의 숙명이다. 정현종 詩人은 그 사이의 비극적 숙명 속에서 찾아낸 작은 희망의 의미로 '섬'을 발견했고, 류시화 詩人은 그 사이에 방향을 놓는다.
사이가 방향을 가진다는 것은 '사이'를 사이가 없게 만든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사이에 놓여진 모든 것들, '공간', '거리', '시간', '관계'를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물고기와 물, 파도와 바다, 날개와 새와 상대적이지 않은 관계에 놓이게 된다. 물고기가 없는 물이나 파도가 없는 바다, 날개가 없는 새는 존재적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모순을 불러온다. 그래서 이 사이는 일방적이다.
나는 너에게 일방적인 관계를 묻고 있다. 네가 존재해서만 내가 살 수 있는, 하지만 역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그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만큼 고귀한 입장에서 말이다. 그래서 사랑이다.
그대 넘어진 곳 함께 쉬어간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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