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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5月의 詩: G·마이나

 

 

 

닿은 곳

 

神恙의 

구름밑

 

그늘이 앉고

 

杳然한

옛 

G·마이나

 

 

김종삼「G·마이나 全鳳來兄에게」 

 


 

미술을 색과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음악은 가장 이상적인 예술이었다. 그들이 형태를 너머 추상으로 달려갔던 것은 물질적인 形과 態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음악을 닮기 위해, 범위없는 자유로움으로 어떤 공간이든 시간으로든 한없이 날아가 우리의 마음에 날아와 앉을 수 있는 음악의 자유로움을 미술 안에 가져다 놓기 위함이었다. 벙거지 모자의 늙은 시인은 그런 음악을 종이 위로 날아와 앉게 한다. 자살한 文友*를  추억하며 그가 청해 들으며 죽었던 바흐의 선율을 종이에 옮겨적으며 문장 사이 그 공간에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극도의 절제된 감정으로 담았다.

 

'물이 닿'은 곳, 神恙(신양), 신 내린 산어귀 '구름밑'에서 시인은 '그늘'이 된 친구의 슬픔을 어루만지며 그윽하고 멀어서 눈에 아물거리는 친구의 부재를 확인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시인이 가진 수직적 공간에서 죽은 친구와의 수평적 공간, '杳然(묘연)'으로 표현된 넓고 멀어서 아득한 평면적 공간의 또 다른  수직적 의미, 깊이로의 이동을 의미하며 그런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의 합일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위에 흐르는  바흐의 선율,  그것은 삶과 죽음의 화해를 의미하며 그의 부재를 시인의 삶에 연결하는 고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저 간결한 문장은 음악이 된다. 삶이 흐르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도 나는 살아 여기 그대를 기억하리라, 레퀴엠 선율을 따라 삶의 기억에 고이 간직하는 찬란한 하나의 의미로.

 

 

*전봉래 시인(1922-1951)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을 전공했고 1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는 1951년 2월, 한국전쟁 때 피난지 부산의 지하다방 '스타'에서 바흐의 노래를 들으며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였다. 그때 그가 남긴 짤막한 유서는 “찬란한 이 세기에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소. 그러나 다만 정확하고 청백하게 살기 위하여 미소로써 죽음을 맞으리다.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소.”라고 적고 있다. 기인으로 유명했던 김종삼 시인은 빈약한 교우관계에서 유일했던 친구의 죽음을 세상의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그 절망을 노래하며 기행을 벌였다. G·마이나 ㅡ 全鳳來兄에게」 이외에도「시인학교」,「전봉래」,「장편·3」에도 전봉래 시인이 등장하고, 이들 시편들에는 그가 언제나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서양고전음악이  흐르고 있다. 

 

전봉래 시인의 동생인 전봉건(1928-1988)도 형을 따라 시인의 길로 들어서, 1950년 <文藝(문예)>지에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이후 6·25전쟁을 겪으며 두 형의 죽음과 전쟁의 체험에 대한 시를 남겼다. 1969년 <현대시학>을 창간했으며 김수영과의 순수시와 참여시 논쟁 (사기(詐欺)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피아노

 

 

J.S. Bach "Little Fugue G minor (BMV 578)" by Yuji Takaha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