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詩集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민음사, 1985)
봄밤은 비애를 어루만진다. 사납고 모진 겨울의 낭하를 건너 꽃과 나무는 그 밤에 조금씩 조금씩 生의 온기를 모아 생명을 밀어낸다. 삶의 방향은 나침반이 자기장을 향하듯 생존의 방향으로 놓여져 있다.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아픈 것들이 눈을 가리고 내 숨을 짓눌러댄다. 모눈종이 눈금마다 새겨넣은 추운 날들이 어떻게 보일런지는 스스로가 역사가 된 뒤에나 확인되겠지만, 스스로 삶의 환희들과 생존의 희열을 느끼는 것은 무언가 주어진 보상이나 성취가 아니라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에 있다. 삶의 실존적 의미에서 '나'는 세상과의 관계적 일보다 먼저 '生'에의 의지를 먼저 증명하기 때문이다. 잠이 들었다가 스스로 눈을 떠야하고 일어서야 하고 걸어야 한다. 나는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
나무는 나무라서 나무를 꿈꾸고 나무가 된다. 그 단순명료한 정의 속엔 너무 많은 것들을 담지 않은, 담백하고 순수한 나무의 삶이 있다. 자아 찾기와 철학적인 탐구를 넘어서면 결국 우리가 찾던 고결한 삶의 진실이 나아가는 방향이 나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래서 그 안에서 오롯이 지켜야할 삶의 순수한 의미를 찾게 된다. 그래서 겨울의 폭풍을 지나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나무의 꽃눈이 결국 生의 의지로서의 원동력이자 삶의 의미의 바탕이라는 것을 우리는 해마다 봄이 되면 다시 알게 되고,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삶의 포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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