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자사전

이 봄, 편지 둘

닿지 못한 편지

 

 
 
……
지금 이 글을 읽으실 선생님을 상상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선생님은 필경 제가 모르는 감각과 사유, 경험을 하셨을 터이고, 그 같은 변화된 내면을 정리하면서 짐을 꾸리는 조금은 힘없는 손끝을 저는 느낍니다. 저는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얼핏하였습니다. 이 여자는 어쩌면 한 달 후 델리에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면 갈색의 물이 흐르는 江邊에 영원히 숨어버릴지도 모른다......같은. 선생님은 호텔 문 앞에서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후딱 방으로 들어와>서 무엇을 하였을까 하는 점입니다. 선생님은 간디 이야기를 하셨지요. 저는 그러나 한 달 뒤인 지금 선생님이 인도에서 간디와 같은 <아버지 聖者>만이 아닌 <聖者인 자연>을 만났을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배는 안 고팠나요? 미지와의 만남은요? 선생님이 경어체로 글을 써서 저는 한참 미안했습니다.
서울의 겨울은 질척거립니다. 비가 줄곧 내렸습니다. 제가 이야기했던가요? 겨울 장마가 진해에는 역병이 돈다고요. 시를 몇 편 쓰기도 했지요.「가수는 입을 다무네」,「입속의 검은 잎」등인데요.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대롭니다. 서울에서 생각하는 인도는 안개와 잎이 큰 나무들입니다. 코끼리처럼 터벅터벅 걷다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는 姜石景도 보입니다. 허리우드 극장에서 3월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상영한다고 합니다. 국도에서는 터키영화 <욜>을 준비중입니다. 전번 설날 연휴에는 인제까지 소양강 위에서 배를 타고 가려했었는데요, 생각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미셀푸코를 읽고 있습니다. 金宗三 전집도 읽었습니다. 루카치의 문학에세이「영혼과 형식」이 나왔습니다. 지난 주 MBC TV에서는 광주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가 방영되었으며, 금강산 공동개발에 南北이 합의하였습니다. <너무 감정에 약하고 무모해 늘 자신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선생님께 진흙탕 같은 서울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는데요, 인도 앞에서는 모든 형식이 가난하지요. 선생님은 서울에 돌아올 것이니까요. 만일 이 편지가 선생님이 인도를 떠난 다음 도착한다면, 누가 이 글을 읽을까요. 인도인이라면, 한국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자라면 이 편지는 나뭇잎이라든가 나무껍질처럼 그에게 느껴지겠지요. 문득 생떽쥐뻬리가 생각납니다. 여행에서, 그것도 땅 전체가 곧 地上에서 사라질 것 같은 먼지투성이의 聖地인 인도여행에서 돌아오는 한 여자에게는 어떠한 편지도 그녀의 지친 눈과 식욕을 채워주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해봅니다. 이제 선생님은 어쩌면 매우 냉정해지셨습니다. 서울에는 환상이 없습니다.잘 아시겠지요? 오늘은 단 한번도 서쪽 하늘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지금 문득 서쪽이 내 방안에 꽉 차 있는 것 같군요. 그러면 선생님 용감하게 돌아오십시오. 오늘은 10일(2月)입니다. 밤입니다. 보름이상 내 서투른 글은 주인을 기다릴 것입니다.
......
 
 
 
-뉴델리로 돌아와서
투어리스트 오피스를 찾아갈 땐 기대 반 체념 반이었지만 편지를 받곤 상반된 감정에 사로잡혔어. 아름다운 혼의 편지를 받았기에 행복했고 초록 색연필 스케치 속에 질척거리는 서울의 겨울이 떠올라서 괴로웠어.
잊고 싶은 서울.
한국은 내게 개인적으로도 상처의 나라여서 난 늘 도망치고 싶어했지. 어느 땐 내가 모국어로 글을 써야 하는 작가라는 것이 야릇한 올가미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러나 나는 용감하게 돌아가야겠지. 지하철을 오가며 읽은 金珖燮의 시처럼 <나는 종처럼 이 무거운 나라를 끌고 신성한 곳으로 가리니> 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업 같은 내 짐을 다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번 여행으로 <인도>를 잃었어. 나는 자신을 변화시킬 그 어떤 것을 찾으러 목마른 순례자처럼길을 떠났지만 어떤 것도 결국은 내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냉혹한 진리에 다시 부딪혔을 뿐이야.
여행하는동안 기존 관념에서 떠나기 위해 거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네달의 인도여행을 마친 지금 난 여전히 빈곤하고 다시 기만 속으로 걸어들어가려 하고 있어.
똑같은 무표정에 바바리까지 똑같이 입은 소시민들에 대해 절망적으로 말하던 그대 같은 시인들이 존재하므로 위안을 삼을 뿐.
추신: 4월 말 아그라에 갔는데 자다가 깨어 문득 그대 생일이 지나갔음을 생각했어. 수니가 선사한 스물아홉 송이의 붉은 장미는 근사했는데 30세는 어떻게 맞았는지.
 
1989. 5. 15. 새벽
누이가
 


 
강석경의『인도기행』(민음사, 1990)에 실린 시인 기형도가 소설가 강석경에게 쓴 편지와 강석경의 답장. 두 사람의 만남과 인연은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와 중앙일보에 소설을 연재하던 소설가였고, 1988년 8월 시인이 강석경을 만나기 위해 황방산 서고사를 찾아갔던 여행의 여정은 그의 <짧은 여행의 기록>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후 강석경은 인도로 여행을 떠났고 시인은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는 1989년 3월에 운명을 달리했기에 그녀가 5월에 쓴 편지는 그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그가 편지에 썼듯 "만일 이 편지가 선생님이 인도를 떠난 다음 도착한다면, 누가 이 글을 읽을까요."라는 말에 대한 화답으로 그가 떠난 다음 도착한 편지를 그가 세상 속에서라도 읽었으면 하는 생각에 작가가 책으로 출판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30여년전의 시인의 수줍은 편지가 답장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돌아누우면 폐벽(肺壁) 가득히 서리가 꽂힌다

 

 
 
화두가 될 수 없는, 그러나 충분히 의미있는 그런 말들 때문에 잠시 서성거려봅니다. 살아가면서 깨우쳐야할 그런 것이겠지요. 창밖엔 하늘 가득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마음빛까지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思惟之心일랄까. 깨진 시계와 널려있는 잡동사니들, 우리를 지켜주는 것들이 그렇게 아주 사소하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럴때면 루드베키아 꽃잎과 덜컹거리며 지나보낸 풍경들이 가만히 일어섭니다. 이미지들 속에 싸여있는 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호기롭진 못합니다. 이틀째 집에만 있었더니 머리가 무겁군요. 아무 일도 없는 그런 일상. 문득 꿈을 꾸다가 다른 꿈 속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내일은 <신비한 모래의 춤>에 가봐야겠습니다. 거기엔 내가 두고 온 시간의 허물들이 있거든요. 거리가 어두워 반 암흑인데도 나에게 안도감을 주던 웅성대던 군중들이 있던 기억 너머로, 이렇게 비오는 날 낯선이에게 잠깐의 따뜻함을 나누어주던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오늘 한낮에 밖에 있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일기예보에는 두 시쯤 50%의 확률로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거든. 보통 그정도면 비가 올텐데 비가 오지 않았어. 그건 아마도 다른 50%의 확률로 비가 오지 않을지 모르는 확률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확률로 계산되어지지 않는 삶의 현상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숫자가 가져다 주는 어떤 맹목보다는 삶의 진실함에 더 많은 의미를 두어야하는게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그래서 오늘은 멀리서 자신의 스텝으로 성큼성큼 봄을 향해 걸어가는 그대를 바라보며 해가 지는 문을 열어보려고해.
 
 

 

'그림자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겨울, 갈대 둘  (5) 2023.12.28
이 여름, 詩 둘  (11) 2023.07.16
삶의 목적  (4) 2022.12.10
이 가을, 文章 둘  (13) 2022.09.25
헤어질 결심  (35) 202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