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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입 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넘쳐흘렀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詩集『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 1989) 中에서

 


민주. 자유. 그의 시대에 그는 이런 詩를 썼다. 나는 다른 시대에 다른 의미로 행간을 읽었다. 음울하고 슬픈 나날들이었다.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는 길 위에서 그의 詩를 읽으며 그 날들을 버텼다. 그를 뒤덮은 그늘이 세상은 어둡고 또 어두웠다. 다른 어둠이었지만 나의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그들을 잊었다. 그들은 나와 달랐다. 그리고 나에게서 사라져갔다, 내가 찾고 싶었던 것도 함께. 다시 생각을 해본다. 그 때 시간들을. 두 권의 詩集과 함께.

 

 

Such a Simple Thing | Ray LaMonta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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