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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길목

그곳에 다녀왔다 - 사유의 방

 

사유의 방(思惟之房). 생각이 포괄적인 인식의 기본개념과 범위를 정의한다면, 사유는 좀 더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건 생각이고, 그 사람의 그리움이 나의 의식적 존재의 의미로 와 닿는다면 사유다.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고 말하며 존재의 증거를 들었을 때 - 번역은 생각으로 되어 있지만 - 그 의미가 사유에 가깝다.
로스코 채플(Rothko Chapel, 미국 휴스턴)과 비교해 본다면, 두 곳 모두 같은 공간적 그리고 공감각적 경험을 체험하게 하지만, 로스코 채플이 색을 통한 미학적 엄숙함의 경험을 선사할 때 '사유의 방'에서 우리는 시간을 통한 철학적인 엄숙함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반가부좌를 틀고 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상념에 잠긴(思惟) 미륵보살이란 뜻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조우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흘러온 아름다운 미소를 통해 존재적 경험에 대한 의미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또한 간접적 감상(感想)과 직접적 대상을 향한 숭고의 경험에 대한 차이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실인 '사유의 방'은 국보 78호,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독립 전시실로 옮겨 함께 전시하는 공간으로, 2021년 11월 21일 개관했다. '사유의 방'은 동선을 따라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깊은 사유의 여정 속으로: 전시실 외부 벽면에 반가사유상을 주제로 해서 '순환과 등대'라는 미디어아트가 상영된다
- 밝음 에서 어둠으로: 전시실 입구로 좁고 긴 어두운 통로로 연결된다. 입구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씌여져 있다
- 시공을 초월하며: 통로를 지나 들어가면 프랑스 출신 미디어아트 작가 장 줄리앙 푸스가 제작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 공간이 나온다.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감각을 경험한다.
- 초현실의 시간으로: 주 전시실. 전체 전시실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 마침내 마주하며: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는 타원형 공간
- 깊이 더 깊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반가사유상의 뒤편
- 빛의 현실로: 외부로 나가는 통로. 어둠에서 빛으로 연결되는 경험
- 여정을 마치며

건축가는 One O One Architects의 대표, 최욱. 대표작으로 학고재 갤러리, 두가헌,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현대카드 영등포 사옥 등이 있다.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