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열 손가락으로 헷갈리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 세다 세상을 뜬다는 것
얼마나 자지러진 휘모리인가.
갓 뜬 노랑 은행잎이 사람과 차(車)에 밟히기 전
바람 속 어디론가 뵈지 않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갑자기 환해진 가을 하늘
철근들 비죽비죽 구부정하게 서 있는
정신의 신경과 신경 사리로 온통 들이비쳐
잠시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고
길 건너려다 말고
벗은 몸처럼 서 있어도 홀가분할 때,
땅에 닿으려다 문득 노랑나비로 날라올라
막 헤어진 가지를 되붙들까 머뭇대다
머뭇대다 손 털고 날아가는
저 환한 휘모리, 저 노래!
「은행잎을 노래하다」
황동규 詩集『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2003)
어떤 우연이 나에게,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커다랗고 둥근 기다림을 줄 것인가
그 둥근 기다림 속 너를 환한 꽃씨로 잠들게 해 이 봄의 꿈으로 나에게 다가오게 할 것인가
조금씩 어둠에서 무너져 내려오는 그 아침의 햇살로, 기다릴 수 있게 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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