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 속삭임
…… 이애, 사람들은 모두가 언제나 너만큼 크냐? 너의 양미간은 참으로 넓고 깊구나. 그 작은 호수마냥, 채송화꽃이 쪼르르 둘레에 피어 있던 그 호수마냥, 너를 보고 있 노라면 나는 목이 마르다. 이애, 저 길 앞으로 나가보자. 이래서는 안되는데, 네가 자고 있을 때면 이애, 나는 너를 흔들어 깨우고 싶다. 그리고 자꾸 수다를 떨고 싶 구나. 그래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모두 평화로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말이지, 그만 땅에 틈이 생기더니…… 그게 바로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오늘의 이야기. 아, 이 애 나는 아직도 찾지 못했구나. 어떻게 얘기를 해주랴. 폭풍의 이야기로, 아니면 가 벼운 봄비 이야기로, 그것도 아니면 지금처럼 피융피융 내리박히는 여름 햇살의 이 야기로? …… 「속삭임, 속삭임」中에서 최윤 ..
더보기
저녁의 수련
무엇을 느끼니? 숨차하는 만년필아, 노을은 울고, 공기들은 놀라는데, 무엇이 들리니? 말라빠진 하얀 종이야, 수련은 눈을 감고 있는데, 연인의 하얀 얼굴 위로 눈꺼풀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듯이 수련의 꽃잎이 닫히고 있는데, 종소리, 종소리, 빗방울이 때리는 불길한 물-종소리, 멀리 있는 연못-물이 검푸른 빗줄기 끝에서 활짝 핀 수련처럼 시늉하며 뛰어오르는데, 만년필아, 하얀 종이야,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저 수련이 저녁의 한숨 속으로 꺼져들면 텅 빈 스크린처럼 하얗게 나의 느린 삶이 남을 것이니, 피가 다 말라버린 하얀 종이처럼. 「저녁의 수련」 채호기 詩集『수련』(문학과지성, 2002) 뚱뚱한 만년필이 주는 포만감에 흠뻑 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만년필이 사랑하는 종이와 그 종이가 그리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