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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의 詩: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더보기
詩와 길의 이야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2月의 詩: 네가 그리울 때만 환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설 때면 불현듯 네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불우한 약속처럼 돌아왔다 이처럼 어설픈 아픔도 그리움이 될 수 있던가 아픔은 흉터처럼 또렷해서 상처나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자주 돌아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봄에 피는 꽃들은 무슨 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한밤중이 지나면 소문처럼 네가 피었다 네가 그리울 때만 나는 환했다 「목련이 필 때면」 박찬호 詩集『나는 네가 그리울 때만 환했다』(문학의전당, 2019) 中에서 어긋나는 건 시간 뿐일까. 스치듯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 너와 내가 어긋나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을 잘못 읽은 탓이다. 그래서 그대와 나는 여기 다른 시간에 서있다. 짙은(Zitten) | 곁에 더보기
빛과 길 사이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 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 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 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 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 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꾀병」 박준 詩集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中에서 몸이 아플 때면 살아있다.. 더보기
오늘의 그대 슬픔이여,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적 없었던 슬픔이여 찬물에 밥 말아먹고 온 아직 밥풀을 입가에 단 기쁨이여 이렇게 앉아서 내 앉은 곳은 달 건너 있는 여울가 내가 너를 기다린다면 너는 믿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 따위도 물은 적이 없던 찬 여울물 같은 슬픔이여, 나 속지 않으리,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을 맞이하는데 나 주저하지 않으리 불러본다, 기쁨이여, 너 그곳에서 그렇게 오래 나 기다리고 있었는가,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나는 바라본다, 마치, 잘 차린 식사가 끝나고 웃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가족 같은 기쁨이여 「기쁨이여」 허수경 詩集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 2005) 슬픈 기쁨, 허수경의 슬픔은 거대한 이 세계의 질서에서 소박한 내면을 통해 정제된 삶.. 더보기
좋은 밤 밤이 올 때까지 밤에 대한 책을 읽는다 책장을 덮으면 밤은 이미 문지방 너머에 도착해 있다 얼마나 많은 동굴을 섭렵해야 저토록 검고 거대한 눈이 생기는가 매번 다른 사투리로 맞이하는 밤 밤은 날마다 고향이 달랐다 밤이 왔다 밤의 시계는 매초마다 문 잠그는 소리를 낸다 나를 끌고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낮의 일을 떠올린다 노인은 물속에 묻히고 싶다며 자전거를 끌고 연꽃 속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살 수 있었다고 최고의 악동은 살아남는다고 지구 어딘가에서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반드시 만날 거라고 밤의 배 속에서 돌들이 식는다 나의 차가운 혀도 뜨거운 무언가(無言歌)를 삼키리라 낮엔 젊었고 밤엔 늙었다 낮에 노인을 만났고 밤에 그 노인이 됐다 밤은 날마다 좋은 밤이었다 「좋은 밤」 심보선.. 더보기
입 속의 검은 잎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 더보기
오래 기다리면 오래 기다릴수록 바람이 가진 힘을 모두 풀어 내어 개울물 속에서 물방울이 되게 바람을 적시는 비 비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늦가을의 미루나무보다도 훤칠하게 서 있어 본 사람은 보이겠다, 오늘 중으로 뛰어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초조히 구름 속을 서성거리는 빗줄기, 빗줄기쯤. 「오래 기다리면 오래 기다릴수록」 신대철 詩集『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지성, 1977) 中에서 **************************************************************************************************** 비가 오는 날, 젖어 본 사람은 안다, 옷깃에 여며오는 눅눅한 슬픔을. 먼 길을 돌아가며 너를 그리워해야 할 것을 알게될 것이므로 나는 슬픈 것이고, 그 슬픔, 개울물에 적셔 비를 .. 더보기
노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西行(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燒却場(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午後 6時의 참혹한 刑量(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時間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象徵(상징)을 몰아내고 있다. 都市는 곧 活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速度(속도)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冊이 되리라. 勝負(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午後 6時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 더보기
비가.2 - 붉은 달 1 그대, 아직 내게 무슨 헤어질 여력이 남아 있어 붙들겠는가. 그대여, X자로 단단히 구두끈을 조이는 양복 소매끈에서 무수한 달의 지느러미가 떨어진다. 떠날 사람은 떠난 사람. 그대는 천국으로 떠난다고 장기 두는 식으로 용감히 떠난다고 짧게 말하였다. 하늘 나라의 달. 2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 속에서 폭풍주의보는 빠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내가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있다. .. 더보기
네가 없는 곳 지금은 네가 없는 곳 하아얀 바람만 불에 타는 곳 여름해만 못 견디게 부서지는 곳 이따금 칼이 우는 곳 다시는 부를 수 없는 네가 아아 바람이 자는 곳 맨드라미도 자는 곳 저주받은 사랑만 불에 타는 곳 사랑마저 팔아버린 밤이 있는 곳 비겁하게 비겁하게 떠나 온 곳 개미처럼 살자고 너를 껴안던 곳 지금은 네가 없는 곳 허나 밤이면 억세게 나를 깨우는 네가 있는 곳! 「네가 없는 곳」 이승훈 詩集 『당신의 방』(문학과지성, 1986) 中에서 *********************************************************************************** 네가 떠난 자리에 여운은 남아 냄새로 남는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꽃이 되고 나비가 된 기억은 그렇게 피어나는 봄과 함께 .. 더보기
꽃이 핀다 뜰이 고요하다 꽃이 피는 동안은 하루가 볕바른 마루 같다 맨살의 하늘이 해종일 꽃 속으로 들어간다 꽃의 입시울이 젖는다 하늘이 향기 나는 알을 꽃 속에 슬어놓는다 그리운 이를 만나는 일 저처럼이면 좋다 「꽃이 핀다」 문태준 詩集 『가자미』(문학과지성, 2006) 中에서 ****************************************************************************** 꽃이 피는 일, 그리워하는 일. 내가 소소히 만들어냈던 무수한 작은 일들, 그리고 그 기억들. 그리운...... 가끔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