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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poem

오래 전의 일 예기치 않은 날 자정의 푸른 숲에서 나는 당신의 영혼을 만났습니다. 창가에 늘 푸른 미루나무 두 그루 가을 맞을 채비로 경련하는 아침에도 슬픈 예감처럼 당신의 혼은 나를 따라와 푸른색 하늘에 아득히 걸렸습니다. 나는 그것이 목마르게 느껴졌습니다. 탁 터트리면 금세 불꽃이 포효할 두 마음 조심스레 돌아세우고 끝내는 사랑하지 못할 우리들의 우둔한 길을 걸으며, 이라는 고상한 짐이 무거워 詩人인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내 핏줄에 실어 버릴 수만 있다면, 당신의 그 참담한 정돈을 흔들어 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다시 한번 이 세계 안의 뿌리를 일으켜 세울 수만 있다면, 하늘로 걸리는 당신의 덜미를 끌어내려 구만리 폭포로 부서져 흐르고 싶었습니다. 「가을 편지」 고정희 詩集『이 時代의 아벨.. 더보기
7월의 詩: 슬픔없는 앨리스는 없다 매일매일이 축제이니 우울해하지 마 각설탕같이 움츠러들지 마 설탕 가루 같은 모래바람이 휘날린다 피로감이 끈적거린다 슬픔 없는 해는 없다 슬픔 없는 달도 없다 사랑한 만큼 쓸슬하고 사람은 때에 맞게 오고 갈 테니 힘들어도 슬퍼하지 마 어디에 있든 태양 장미를 잃지 마 너를 응원하는 나를 잊지 마 「슬픔없는 앨리스는 없다」 신현림 詩集 『반지하 앨리스』 (민음사, 2017) 성냥팔이 소녀가 불꽃을 태우며 기우뚱 환상을 보는 동안 앨리스는 커다란 구멍으로 끝없는 낙하를 했다. 원죄의 고독, 그 쓸쓸한 확인을 위해서 기꺼이 오랜 시간의 비행을 감수했다. 가녀린 숨결이었으면, 바람에 한없이 나풀대는 깃털이었으면, 그래서 끝없는 가벼움으로 이 세상을 건넜으면. 그런 앨리스에게 누군가 묻는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 더보기
물방울에게 길을 묻다 斷想錄 완벽이라는 말에의 집착은 존재적인 모순을 넘어선 자기완성의 의지를 지향한다. 가치상관의 의미를 넘어선 완전무결, 無. 흔적없이 증발한다는 의미는 그 연장선에 닿아있다. 불교철학에서 물방울은 존재요소의 한 부분이고 또한 영원한 순환을 의미한다. 영원한 순환은 그 바탕을 이생의 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물방울의 순환은 또 다른 의미로, 하나의 존재로서 다른 요소들과의 화합이라는 연기(因緣), 즉 인연에 의해 다른 것으로 현현한다는 불교의 연기론까지 가 닿는다. 이 연기론은 무상, 무아, 공성(空性), 중도(中道)의 의미까지 이어보면 물방울의 의미소가 갖는 증발의 속성과 존재의 공적인 상태를 하나로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로부터 물방울로의 전이가 갖는 이런 극적인 상태는 인간이 갖는 존재적인.. 더보기
인생은 여행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6월의 詩: 여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여우 사이」 류시화 詩集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 1996)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사이'만큼의 공간이 있고 섬과 섬 사이에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공간과 거리만큼의 물리적 위치에 비례해 환산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과 거리가 시간으로 환산되는 만큼, 두 물체간의 시간은 또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 관계는 두 상관물의 독립적 존재로서 상대적이다... 더보기
노을展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5月의 詩: G·마이나 물 닿은 곳 神恙의 구름밑 그늘이 앉고 杳然한 옛 G·마이나 김종삼「G·마이나 ㅡ 全鳳來兄에게」 미술을 색과 형태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모더니즘 미술가들에게 음악은 가장 이상적인 예술이었다. 그들이 형태를 너머 추상으로 달려갔던 것은 물질적인 形과 態에 제한을 두지 않는 음악을 닮기 위해, 범위없는 자유로움으로 어떤 공간이든 시간으로든 한없이 날아가 우리의 마음에 날아와 앉을 수 있는 음악의 자유로움을 미술 안에 가져다 놓기 위함이었다. 벙거지 모자의 늙은 시인은 그런 음악을 종이 위로 날아와 앉게 한다. 자살한 文友*를 추억하며 그가 청해 들으며 죽었던 바흐의 선율을 종이에 옮겨적으며 문장 사이 그 공간에 이별의 슬픔과 그리움을 극도의 절제된 감정으로 담았다. '물이 닿'은 곳, 神恙(신양), .. 더보기
삶의 존엄과 실존의 사이, 영화 <Nomadland>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하루하루 종종 걸음으로 소리없이 다가가고, 지나간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티끌의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어 왔구나.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아! 인생이란 기껏해야 걸어다니는 그림자,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시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그건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 요란한 소리와 노여움에 가득 찼지만 뜻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 멕베드, 5막 5장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삶을 목적과 주관적 가치를 결정하고 '나'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가야할 동기부여를 만든다. 거기에는 몇 가지 요구사항이 따르는데 그런 삶의 방식에 대한 결정이 도덕적이며 불법.. 더보기
사랑의 몫 내가 하나의 갈대라면 그대는 다만 바람이어야 했다 흔들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람이 바람을 몰고오는 바람의 속, 그대는 나의 바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내가 강가에 피어난 한 포기의 여린 풀로 있을 때 그대는 거대한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끝없는 강풍이어야 했다. 바람도 없고 바람이 흔드는 소리도 없는 이 미친 돌개바람의 속, 그대는 무풍의 바람이어야 했다. 그래야 했다. 내가 이름 없는 별이 되어 한줄기 어둠으로 화하고 있을때 흔들리며 바로잡는 조그마한 죄, 그대는 나의 형벌 영원한 나의 바람이어야 했다. 「사랑의 몫」 박정만 詩集 『맹꽁이는 언제 우는가』(오상사, 1989) 사랑아, 네가 있다면 그래야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너는 바람이 바람을 몰고 오는 바람의 속, 바람만이 아닌 그 진실의 의.. 더보기
인생의 회전목마 단상록(斷想錄) 원의 정의, 하나의 정의된 정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위치하는 점들의 자취, 궤적 혹은 연결. 원은 가장 궁국적이며 가장 완벽한 형체이다. 시작도 끝도 없은 이 완전무결한 도형은 그 형태적 의미를 통해 근원, 창조, 영원, 평등, 무한, 그리고 효율적인 실용의 의미까지 확장을 한다. 완벽한 대칭, 모든 점과 선이 연결되어 끊임없이 회전할 수 있는 모순성 없는 영원성. 그러나 원의 비극은 그 모순성의 부정을 증명하기 위한 끊임없는 회전에서 기인한다. 스스로를 완성하고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궤도를 돌고 있는 점들의 멈출 수 없는, 슬픈 의미의 영원. 원-Circle, 만다라-曼茶羅, मण्डल, Mandala, 회전목마-Merry-go-round. Merry-go-round of Life (인.. 더보기
4月의 詩: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 겨울 오후 대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처럼 거대하고 두꺼운 무게로 ㅡ 그 빛은 상처없는 신성한 고통을 남기고 내 안에서 많은 의미의 변화를 만들었다 ㅡ 그것은 누구에게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 봉인된 슬픔은 오롯이 대기가 우리에게 건네준 장엄한 고뇌 ㅡ 그 빛이 내려올 때 풍경은 귀기울이고 그림자들은 숨을 멈추며 얼굴에 서린 죽음의 그림자처럼 아득하게 떠나간다 ㅡ 에밀리 디킨슨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There's a certain Slant of light, Winter Afternoons ㅡ That oppresses, like the Heft Of Cathedral Tunes ㅡ Heavenly Hurt, it gives us ㅡ We can find no.. 더보기
그곳에 다녀왔다 - 임가화원(林家花園) 임가화원(林家花園)은 이름 그대로 임씨 가문의 화원이라는 뜻이다. 대만 신 타이페이시(New Taipei City)에 위치해 있는 임가화원은 임본원(林本源, Lin Ben Yuan) 가문이 지은 정원으로, 타이난(Tainan)에 있는 오원(吳園), 신주(Hsinchu)의 북정원(北郭園), 타이중(Taichung)의 우봉래원(霧峰萊園)과 함께 대만의 4대 정원 중의 하나이다. 청나라시절 중국 푸젠성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한 임씨들이 쌀과 소금으로 축척한 부로 동치제와 광서제 시대에 걸쳐 조성했고 중국 정원 건축이 대만에서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하나의 예가 되었다. 2만평방미터의 대지를 개인정원으로는 중국의 정원과 비교해서도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임가화원은 1977년 임씨가문이 타이완 정부에 헌납했고, 198..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