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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다녀왔다 - Rothko Chapel. 2 앞서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처럼(그곳에 다녀왔다 - Rothko Chapel) 메닐 부부 (John & Dominique de Menil)가 텍사스주 휴스턴에 Menil campus 구성의 일환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가 만나 각각의 종교적 이념를 초월한 명상의 공간을 세우고자 했고, 1964년 마크 로스코(Mark Rothko)에게 그 구상을 실현해줄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의뢰했다. 로스코 예배당은 그의 명상의 공간으로서의 계획을 바탕으로 그의 그림들의 배치, 자연채광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내부 공간의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 필린 존슨(Phillip Johnson)으로 시작한 건축가는 로스코와의 의견 대립으로 후에 하워드 반스톤(Howard Barnstone)과 유진 오브리(Eugene Aubry)등의 건.. 더보기
그곳에 다녀왔다 - Rothko Chapel 로스코는 자신의 미술적 숭고에 대한 접근 방식을 '침묵'으로 정의했다. 45cm의 거리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물리적 요구사항이라면, 침묵은 말이 가져다주는 일차적 예술의 향수(享受)에 대한 방법적 극복을 의미한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덧대어진 색덩어리의 색채적 감상으로서가 아니라, 침묵으로 색을 넘어서고 윤곽의 유한함을 넘어서 형태의 관계를 벗어나면 수평과 수직으로 분할된 평면의 공간이 팽창과 수축을 통해 혼합된 색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울림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감정의 파도와 색 너머의 세계에 있는 운명과 비극에 대한 인간의 기본의 감성을 조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통한 원시적이고 근본적인 내면의 조우, 그것이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세상의 의미였던 것이다. Rothko Ch.. 더보기
10月의 詩: 통영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이러나 바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주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 더보기
斷想 - 그림과 음악과 詩와 영화 이야기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de Goya) 프란시스코 고야. 18-19세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의 스페인 화가. 삶의 밝은 세상과 어두운 세상을 고루 살다간 사람 혹은 巨人. 궁정화가 시절의 그림에는 밝고 환한 인물들을 통한 삶의 환희와 즐거움이 가득한 그림을, 콜레라로 청각을 잃고 프랑스 대혁명, 스페인 독립 전쟁 (혹은 반도전쟁, Peninsular War)를 거치며 어두운 세상을 표현하던 검은 그림들 연작을 만들던 삶을 살았다. 얼마전 '스페인의 영광'이라는 전시회에서 고야의 'The Black Duchess'라는 그림을 본 후로 한동안 그의 그림과 삶과 스페인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그리고 그의 그림에 영감을 받은 사람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엔리케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더보기
9月의 詩: 구월의 이틀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까지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으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 더보기
文章들 나는 저 심연으로 내려가야 한다. 저녁 바다 저편으로 떨어져 하계(下界)를 비추어주는 그대처럼, 그대 넘쳐흐르는 별이여! 나는 그대와 마찬가지로 몰락해야 한다. 내가 저 아래로 내려가 만날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러니 나를 축복해 다오. 그대 고요한 눈이여! 크나큰 행복조차도 질투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대여! 「차라투스트라의 머릿말」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우리는 이별없는 세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별은 부인하며, 우리가 떠날 때엔 아침마다 이별을 잠들게 한다...그러나 우리는 미래가 있는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생활, 별의 세계로 가는 세대일 것이다. 새로운 태양 아래에서 새로운 가슴을 가지려고 하는 희망의 세대다.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사랑.. 더보기
On The Road Again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중에 하나, 건너온 길과 건너간 길 사이 온갖 암호처럼 얽힌 길과 씨름을 하다 뒤돌아 온 길을 바라다보면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러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되묻게 된다 기억이 나를 기억하지 못했거나 길 위에서 물결이 되어버렸거나 오늘을 위해 기억해둔 시간과 장소는 어제의 일이 되어 사라지고 문득 이 모든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혹은 이 다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하게 된다 길을 걷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그 시간이 나를 다시 길로 밀어내는 거대한 순환 속 그 길 위의 작은 돌맹이 그건 칼레 아그넬로나 코르테 로타, 낯선 길이름을 찾은 일이 아니라 이 길의 어디 쯤 나를 놓아 두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 이정표도 없는 덩그런 길에 사람들 바삐.. 더보기
8月의 詩: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굴참나무숲 너머 자작나무숲이 아름다운 날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그 나무 속에 있다 나는 길 위에 있고 파도는 길 밑의 길까지 밀려온다 나는 태양을 향해 걷고 태양은 내가 걷지 않는 길까지도 걷는다 그것을 음악이라 이름 부르면 삶은 더욱 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 위에는 단지 세 그루의 나무만 서 있다 나무에 황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의 영혼에도 나무 세 그루는 서 있다 이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대가 이 세상 한구석에 골목처럼 접혀 있어도 구석은 이미 보석과 같다 나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밑의 사랑 위에 있다 태양의 빛이 끝나는 길 위에는 달빛의 길 또한 흐르고 있고 수평선이 하늘로 빠지는 다섯번째 둔덕에서 부는 휘파람은 스산하다 그때 내가 읽었던 소설은 누가 바람을 .. 더보기
500일의 썸머 500일의 썸머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Marc Webb 감독의 2009년 로맨틱 영화. 톰(조셉 고든레빗)과 썸머(조이 데셔넬)의 사랑이야기. 영화는 아래와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신은 이것이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뉴저지 주 마게이트 출신인 톰 핸슨은 운명적인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 속에서 성장했다. 이는 우울한 브리티시 팝을 너무 어린 나이에 접하고, 영화〈졸업〉의 내용을 완벽하게 오해한 데서 비롯됐다.” 썸머 효과(Summer Effect), 썸머가 거주하던 지역에 일어난 각종 효과들, 예를 들어 썸머가 졸업앨범에 적어놓은 스코트랜드 밴드 'Be.. 더보기
7月의 詩: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이성복 詩集 『남해 금산』(문학과지성, 1986) 中에서 34년이 .. 더보기
言語의 庭園 (言の葉の庭)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さしくもり あめもふらぬか きみをとどめむ 천둥소리를 멀리서 들려주며 몰려오는 비구름아 비라도 내려주렴 그대가 여기에 더 머무르도록 なるかみの すこしとよみて ふらずとも われはとまらん いもしとどめば 천둥소리를 멀리서 들려주며 비구름 몰려오지 않아도 나는 머물겠소 그대가 여기에 더 머무른다면 봉정사 만세루에서 만났던, 넓디 넓은 들판을 넘어 산을 넘어 달리는 광야의 비, 소수서원 가는 길 만났던 비는, 차를 세우고 멈춰야할 만큼 크고 무거운 비, 외가 마당 풀밭을 적시던, 기와를 먹빛으로 물들이던 고요한 비. 비에 그려 쓴 抒情詩. 너무 투명해서 마음이 비쳐질 것 같은. 유키노의 마음도 타카오의 마음도 그림자 하나 드릴 수 없는 투명한 빗소리에 잠겨있었다. 비를 사랑해. 멈출 수 없는 .. 더보기
바람은 그대 쪽으로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 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나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