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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나무

4月의 詩: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비친다, 겨울 오후 대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처럼 거대하고 두꺼운 무게로 ㅡ 그 빛은 상처없는 신성한 고통을 남기고 내 안에서 많은 의미의 변화를 만들었다 ㅡ 그것은 누구에게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 봉인된 슬픔은 오롯이 대기가 우리에게 건네준 장엄한 고뇌 ㅡ 그 빛이 내려올 때 풍경은 귀기울이고 그림자들은 숨을 멈추며 얼굴에 서린 죽음의 그림자처럼 아득하게 떠나간다 ㅡ 에밀리 디킨슨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There's a certain Slant of light, Winter Afternoons ㅡ That oppresses, like the Heft Of Cathedral Tunes ㅡ Heavenly Hurt, it gives us ㅡ We can find no.. 더보기
3月의 詩: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는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 더보기
2月의 詩: 언젠가는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슬퍼질 것이다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가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때론 화를 내며 때론 화도 내지 못하며 무엇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던 기억 때문에 목이 멜 것이다 내가 정말 기다린 것들은 너무 늦게 오거나 아예 오지 않아 그 존재마저 잊히는 날들이 많았음을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기다리던 것이 왔을 때는 상한 마음을 곱씹느라 몇 번이나 그냥 보내면서 삶이 웅덩이 물처럼 말라버렸다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는 「언젠가는」 조은 詩集 『생의 빛살』(문학과지성, 2010) 사람의 기억엔 주소가.. 더보기
1月의 詩: 당신은 첫눈입니까 누군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 했을 것이다 생각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오르는 가람을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 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 더보기
12月의 詩: 조그만 사랑노래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詩集『三南에 내리는 눈』(민음사, 1975) 中에서 어제는 오늘의 내일. 그 어디쯤에선가 문득 걷던 길을 멈춰서서 나는 오늘의 일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 하루 시간이 쌓아놓은 나의 生活이 관계한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을 곰곰히 되짚어 본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과 어제의 기억들이 오늘의 기억들에게 찬찬히 시간의 忍苦를 이야기해주는.. 더보기
수인선 철도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갈대 북서풍과 청둥오리의 2월 스스로 독을 품게 하던 겨울의, 가난과 갈증의 새벽으로 가는 밤마다 몸서리치며 떨던 바다를 한 광주리씩 머리에 이고 고개 숙인 낙타처럼 또박또박 걷게 하는 하나뿐인 길 떠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빵과 홀로 남은 여자의 헝클어진 머리같은 그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깨진 소주병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불륜의 끊임없는 바퀴와 익숙한 체중을 못 잊어하는 옥수수밭에서 숨죽여 지켜보는 아이들의 뜨듯한 가랭이 같은 아직도 귀대면 중무장한 병사의 씩씩한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 오래도록 남아서 태업한 꿈 속까지 이어지는 나는 수척한 햇빛에 이리저리 반사되며 얻어터지며 철길 위에 팔 벌려 수평을 잡으며 위태롭게 걷는다 그렇게 왔다 가나부다 70년대 배호 김종삼 그리고 너.. 더보기
즐거운 생일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너머 막 옷 갈아입는 중인 헛것도 보인다 자꾸 헛것이 보이고 헛것 너머 헛것 ······ 너머 무한의 헛것이 보인다 내가 사진 찍어준 친구들 지나가다 보면 아직도 그 자리에 김치이, 하고 굳어 있다 내 얼굴에는 굵은 소금에 좌악, 긁힌 상처가 있다 십 년 만에 땀을 닦은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나랑 헤어진 여자는 아직도 그 카페에서 떨리는 손으로 식은 커피잔을 쥐고 있다 나는 쏟은 물 위에 유서를 썼고 서명까지 남겼다 죽어버려라, 라는 말이 증발해버렸을 때 나는 비로소 가벼움에 취했다 나는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둘 중에 하나를 십 초 이내에 선택할 줄도 안다 나의 표정은 도시 게릴라의 마지막 항전 기록과도 같다 그리.. 더보기
11月의 詩: 레몬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10月의 詩: 통영 구마산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이러나 바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령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주 어장주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 더보기
9月의 詩: 구월의 이틀 소나무숲과 길이 있는 곳 그곳에 구월이 있다 소나무숲이 오솔길을 감추고 있는 곳 구름이 나무 한 그루를 감추고 있는 곳 그곳에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숲에서 보냈다 비와 높고 낮은 나무들 아래로 새와 저녁이 함께 내리고 나는 숲을 걸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뭇잎사귀들은 비에 부풀고 어느 곳으로 구름은 구름과 어울려 흘러갔으며 그리고 또 비가 내렸다 숲을 걸어가면 며칠째 양치류는 자라고 둥근 눈을 한 저 새들은 무엇인가 이 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어 한 곳으로 모이고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모래의 강물들 멀리 손까지 뻗어 나는 언덕 하나를 붙잡는다 언덕은 손 안으로 부서져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비를 만드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잎사귀를 흔들어 비를 내리.. 더보기
8月의 詩: 바다로 가는 서른세번째 길 굴참나무숲 너머 자작나무숲이 아름다운 날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태풍이 그 나무 속에 있다 나는 길 위에 있고 파도는 길 밑의 길까지 밀려온다 나는 태양을 향해 걷고 태양은 내가 걷지 않는 길까지도 걷는다 그것을 음악이라 이름 부르면 삶은 더욱 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 위에는 단지 세 그루의 나무만 서 있다 나무에 황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의 영혼에도 나무 세 그루는 서 있다 이 길 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대가 이 세상 한구석에 골목처럼 접혀 있어도 구석은 이미 보석과 같다 나는 길 위에 있고 길은 내 밑의 사랑 위에 있다 태양의 빛이 끝나는 길 위에는 달빛의 길 또한 흐르고 있고 수평선이 하늘로 빠지는 다섯번째 둔덕에서 부는 휘파람은 스산하다 그때 내가 읽었던 소설은 누가 바람을 .. 더보기
7月의 詩: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이성복 詩集 『남해 금산』(문학과지성, 1986) 中에서 34년이 .. 더보기